포레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스했던 날들>이라는 책은 작은 나무라 불리던 저자가 체로키족인 인디언 조부모님과 산속에서 성장하던 어린 시절의 자전적인 회상록이다.
그들은 산을 경외하고 어머니인 대지, 모노라(Mon-o-lah)를 사랑하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새벽잠에서 깨어나는 산과 떠오르는 태양을 찬미하고 세상만물과 교감하는 영혼이 따스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민 오기 전, 미국방문길에 경비행기를 타고 그랜드 캐년을 관광했었다. 비행기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위태롭게 날아가는데 안내원이 깊은 계곡을 가리키며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보호구역이라고 했다. 만약에 비행기가 저 산 아래로 불시착하면 인디언처럼 살아야한다는 농담에 웃기는 했지만 이곳 산에도 한국처럼 먹을거리가 풍성할까 궁금했었다.
어릴 적 내 고향에 봄이 오면 산나물 캐러 어머니를 따라 산에 오르곤 했다.
산자락 마다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각가지 산채가 지천에 새싹을 돋우고 있었다. 자연은 계절 따라 풍요를 베풀고 사람들은 과욕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취할 줄 알았다.
어머니가 송이버섯으로 차를 달이고 체로키 할머니가 산 제비꽃차를 마실 수 있음은 자연의 은총이 아니었을까싶다. 인디언할아버지는 옹이 박힌 소나무로 화톳불을 피우고, “숲도, 나무를 스치는 바람도 / 이젠 모두 그가 온 걸 알지. / 아버지 산이 노래 불러 맞아준다네” 할머니가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 부를 때, 우리선조들은 박주산채(薄酒山菜)로 화조풍월(花鳥風月)하였으리라.
우리는 우주여행을 목전에 둔 고도의 기술문명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혜택과 편리함을 마다하며 시골이나 산속으로 생활터전을 옮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보통사람들이 정년퇴직 후에나 꾸어봄직한 자연으로의 귀의를 한창 나이에 시도한다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문명을 거부하는 미국의 애미쉬(Amish) 집단이나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한국의 청학동 사람들과는 다르다. 어쩌면 문명과식으로 막힌 체증(滯症)도 치유하고 청산에 들어 참 행복을 찾아보려는 맑고 소박한 소망을 품은 사람들일 것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청산별곡가락이 내 가슴 안에도 흐른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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