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델몬트 한국에 왔읍니다.” 1983년 6월 4일 롯데칠성은 한국일보 12면에 새로운 주스 브랜드를 알리는 대형 광고를 게재했다. 당시 세계 최대 주스 회사 델몬트와의 ‘기술 제휴’를 부각했다. ‘롯데 스카시’를 ‘델몬트 스카시’로, ‘롯데 무가당’을 ‘델몬트 무가당’으로 바꿨다. 델몬트는 이후 한국에서 ‘과일주스의 대명사’다. 손잡이 부분이 파인 두툼한 유리병은 전국 가정에서 보리차 병으로 널리 활용됐고, 1989년 포르투갈어 ‘따봉’(매우 좋다)을 활용한 광고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 그 델몬트가 최근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법정관리)를 신청했다. 1886년 창설 이래 최대 위기다. 미 언론이 분석한 원인은 수요 감소다. 수요 감소로 출하량을 줄였고, 감산은 제품당 생산단가를 높여 가격 경쟁력을 해쳤다. 다시 수요가 주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역동적 거시 환경의 도전”이라고 에둘렀지만, 결국 고객이 이젠 델몬트를 찾지 않는다는 얘기를 달리 말한 것뿐이다. 왜 수요가 줄었을까.
■ 한국에선 델몬트 하면 ‘주스’지만, 실은 통조림이 주업이다. 대한제국 시절인 1909년 델몬트는 이미 세계 최대 통조림 과일·채소 생산 기업이었다. 그러나 맛과 영양이 최고였던 세상이 저물고, 사람들은 식품의 친환경성과 첨가제 유무를 먼저 따지기 시작했다. 델몬트는 “저희 회사 품목의 95%엔 보존제가 없습니다”라며 항변했지만, 과일 통조림은 끝내 방부제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결국 델몬트도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이 되고 말았다.
■ 코닥(필름), 미놀타(카메라), 블랙베리(쿼티폰), 블록버스터(비디오 테이프 대여) 등 제품과 함께 쇠락한 기업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수두룩하다. 반면 소니는 워크맨·캠코더 기업에서 금융·엔터·반도체 회사로 거듭났고, 애플은 매킨토시에서 아이폰으로 정체성을 바꾸며 더 큰 회사가 됐다. 잘나가던 한국 기업들도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바꾼다고 다 성공하진 못한다. 그러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한 기업들은 모두 ‘내가 가장 잘하는 것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던 회사였다.
<이영창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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