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마지막 온기를 남기면서 서서히 지붕 위에서 사라지는 시간. 아들의 메시지가 왔다. “엄마, 나 키울 때 내게 가장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나요?” 불쑥 들어온 말에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이 멈칫했다. 메시지를 보냈다. 말을 참 잘했어. 어떤 모임에서든 네가 나타나면 금방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어. 너는 머리도 좋아서…. 옛날 생각을 하자 기분이 막 좋아지는데 “엄마! 칭찬 말고 약점을 말해줘.”
아들은 타인의 시각에 비치는 자기 모습과 스스로 인식하는 자아를 비교해 보고 ‘나’라는 존재를 정확하게 점검하려는 듯했다. 아차, 이 철없는 엄마를 어찌하나. 나는 소파에 기대었던 몸을 곧추세우고 핸드폰을 다잡았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하는 데 관심이 없거나 귀찮은 일은 마무리를 잘 안 했어.” 아들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엄마. 나는 ‘사자 유형’의 사람이야. 사자는 에너지가 필요할 때는 엄청나게 쓰고 필요 없을 때는 그냥 쉬거든. 그러고는 유튜브 영상을 보내주었다. 영상 속 인물은 나발 라비칸트였다. 그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일해야 할까?’ 같은 명제로 젊은 세대를 열광시키는 인도계 사업가이자 사상가였다.
영상에서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여덟 시간 일하면 여덟 시간만큼의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일해도 삶은 제자리일 수 있고, 누군가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을 바꾸기도 하죠.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보다 누구와, 어떻게 일하느냐예요”
이 말을 듣는데 이상한 후회가 밀려왔다. 아, 나는 그 ‘열심히’라는 마법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던가. 땀방울이 곧 훈장이라 믿었던 무조건 ’열심히’는 우리 세대의 가장 빛나는 가치였지 않았는가.
나발은 또 말했다. “인간은 기계처럼 일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자처럼 살아야 해요. 사자는 온 힘을 쏟아 사냥하고 그 외의 시간엔 그냥 쉬죠.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에너지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뒤이어 ‘사자처럼 살아라.’라는 말에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자는 어느 순간 번개처럼 몰입한다는데. 나는 평온하게 매 순간을 숙제하듯 살아왔다. 졸업, 취업, 결혼, 은퇴. 그 정해진 메뉴판처럼 삶을 계획하고 먼저 걸어간 발자국만 따라 걸었다. 오늘날 MZ세대가 추구하는 도전이나 파격은 곧 인생의 탈선이었다. 새삼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이렇게 살아온 삶에 만족하니?’
MZ세대 삶의 방식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와 연결된 일을 하려고 애쓴다.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물음 없이 진행되는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일’의 정의는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우리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아 마음 졸이고 그들은 그런 시각으로 보는 우리를 불편해 한다.
이제 나는 안다. 아들이 보내준 영상은 하나의 링크가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해 가려는 조용한 ‘사자의 첫걸음’이었다. 그 걸음은 한 청년의 도전이자, 낡은 궤도를 걷던 엄마의 마음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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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소설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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