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전 TV 구성작가)
매주 토요일,한글 학교의 마지막 수업시간이 되면, 영어로 얘기하고 놀던 아이들이 모여 한국말로 연극, ‘개미와 베짱이’를 연습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더듬거리며 한글 대사를 읽는 일곱 살 아이부터 영어 억양으로 한국말을 하는 십대 아이까지 한 교실에 모여 있다. 이 아이들을 묶어주는 건 연극반 선생님의 열정과 사명감만은 아니다. 한국말로 연극을 함께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극을 함께 만들며 아이들의 마음 속에 심어지는 것은 정확한 한국말 대사 뿐만은 아니다. 노래와 춤과 함께 다양한 아이들이 어울려서 만들어 내는 한국말의 화음이 가슴 속에 스며들어가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아이들에게 남을 건, ‘나는 한국인’이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이 씨가 되어 아이들이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한국인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한국의 미국이민사는 이제 더 많은 교포 2세,3세들을 갖게 되었다. 미국화된 그들을 보며 그들 속에 얼마만큼의 한국인의 씨가 담겨져 있을까 궁금해 하곤 했었다. 미국이란 사회 속에서 영어를 사회적 언어로 쓰며 살아나간 사람들, 일터로 나간 부모들 밑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살아나간 아이들은 한국인의 얼굴을 한 미국인이 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떠올려보곤 한다.
이제 우리들이 한국인이라는 꽃을 미국 땅에 꽃피울 수 있는 길은 한국문화라는 비료를 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영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아이지만, 한국인이 느낄 수 있는 정신적 공감대를 어떤 방식으로든 심어준다면 그 아이들은 한국인의 향기를 지닌 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무용이 될 수도 있고, 한국의 구전동화가 될 수도 있다. 그 속에는 분명히 한국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내가 만나는 한국 아이들에게 어떤 특별활동을 하고 있는지 항상 묻게 된다. 그 아이들은 한국을 전하는 꽃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영어가 더 편하다고 해도 탓할 수 없다. 땅을 바꾸었기에 나름의 방법으로 변형이 생길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만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그들은 세계에 한국을 전하는 메신저요, 희망이다.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 지도하는 연극반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 뒤로 장구,북,꽹과리의 어울림 소리가 들린다. 사물놀이반에서 들리는 장단소리다. 제법 신명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하나둘’하는 기합소리가 들린다. 흰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팔과 다리를 뻗으며 내는 소리다. 한국학교에서 들리는 이 소리들이 어울려 이국땅에 심어진 한국의 씨앗에 한국의 향기를 만들어가길 바래본다. 그것이 우리 선조로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한민족의 긍지가 세계화의 시대를 사는 우리 세대를 거쳐 다음 세대에 꽃피울 수 있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겐 희망의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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