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한 카리스마를 가진 그때 그 시절, 지금도 추앙 받는 인물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인 동포들의 관심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경제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당선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도 1929년에 닥쳐온 대공황에 휘말려 미국이 난항에 허덕이고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경제 난국 타개의 “뉴딜”(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으로 은행에 대한 정책 통제의 확산, 관리 통화제 도입, 농산물 가격 인상에 의한 농민 구매력 증대 등을 꾀함)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32년 제3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4번이나 중임을 맡았었던, 지금도 미국 국민들의 가슴속에 기억되는 “루스벨트”(1882-1945), 재임1933-1945)를 소개 한다.
그는 뉴욕 주의 하이드 파크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컬럼비아와 하버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고 1907년 변호사로 출발, 1910년 뉴욕 주의 민주당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 하였다. 그러나 39세 때인 1921년 수족이 마비되는 병에 걸렸으나 부인의 헌신적인 노력과 그의 강한 의지로 병을 극복하고 1928년 정계에 복귀하여 뉴욕 주지사에 당선되어 세계적인 공황으로 허덕이던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 하다가 1932년 ‘뉴딜’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호경기 시대가 끝나고 1929년에 닥쳐온 대공황에 휘말려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첫째 임무는 경기를 회복시켜 산업을 부흥시키고 실업자를 구제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뉴딜’ 정책을 수행하여 성공을 거두어 2년 만에 국민들의 생활은 안정 되었고, 국민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한편 대외적으로 협조 정책을 쓰다가 일본군의 진주만 습격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중립을 선언 했다. 그러나 1941년 일본과의 전쟁을 계기로 해서 전쟁에 참가하여 ‘처칠’(1874-1965), ‘스탈린’(1879-1953)과 테헤란, 얄타 등의 회담을 거듭한 끝에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 했고, 대서양 헌장을 선언하여 유엔의 기초를 세웠다.
1944년에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4선 대통령이 되었으나 이듬해 제2차 대전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한 체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전에 외친 4가지 자유, 곧 언론과 발표의 자유, 신교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는 오늘날 까지도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루스벨트’같은 훌륭한 정책을 펼치는 청교도 정신의 인물이 되기를 기원 한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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