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일종의 장애의 예술이다. 장애란 핸디캡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행위 자체로 겨울잠이나 은둔 등의 무기력한 기간이 필요한 장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음악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지난한 습작 기간과 혹독한 검증을 거쳐야만 비로소 하나의 예술, 또는 예술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너무 힘들고 긴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제대로 꽃 한번 피우지 못하고 사라져 가야 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물론 예술이란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와 따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무명의 화가 등이 죽어서나 그 이름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보면 예술가에게 예술적 재능이란 때로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름난 예술가들에게는 대체로 후원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늘아래 유아독존, 그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대 예술가가 된 경우는 없다. 하다못해 천재 모차르트의 경우도 그 뒤에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고 천재화가 반 고흐 역시 그 뒤에는 동생 테호가 있었다. 베토벤도 라즈모프스키, 발트슈타인 등 여러 귀족들의 도움이 있었으며 ‘비창 교향곡’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또한 폰 메크 부인이라는 미망인의 절대적인 후원없이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고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명작들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흔히 차이코프스키하면 ‘비창 교향곡’과 함께 폰 메크 부인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사람은 전혀 안면이 없던 사이로서 그저 한 사람의 팬이 무려 13년 동안이나 차이코프스키에게 연금 6천루블(현 시세 1백50만 달러)을 지원한 경우였다. 차이코프스키로서는 로토에 당첨된 경우나 다름없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금도 미스테리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것이 단순히 로토 당첨이나 행운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다. 즉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그만큼 매혹적이었고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후원하고 싶은 그런 작곡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폰 메크의 사랑과 배신이었다. 폰 메크는 1890년 (차이코프스키가 죽기 3년전) 갑자기 절교 편지를 보낸 뒤 금전적 후원도 중단하고 말았다. 차이코프스키는 폰 메크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고 폰 메크에 대한 애정이 단순히 금전적 이유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천명했지만 여전히 친구로 남길 바랬던 차이코프스키와는 다르게 폰 메크는 그 후로도 묵묵부답 애정은 싸늘하게 식었고 차이코프스키는 일종의 배심감과 절망감으로 3년후 세상을 뜨고 만다.
폰 메크의 애정이 식은 이유를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의 사인(死因)과 연관지어 동성애 발각 등이라고 말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사망후 3개월만에 폰 메크 역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무튼 폰 메크와 차이코프스키와의 인연은 차이코프스키가 마지막으로 남긴 ‘비창 교향곡’ 등을 통해 그 관계의 절대성(차이코프스키의 찐사랑)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지만, 폰 메크야 말로 어쩌면 (결혼 실패 등) 여성와의 관계가 늘 서툴렀던 차이코프스키에게 있어서 천사였자 동시에 악마의 얼굴을 한 여자였는지도 몰랐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베토벤, 모차르트 등 독일 고전파의 음악이 주는 감동과는 전혀 다른 전형을 보여주었다. 마치 계절의 감성을 전해준다고나할까. 음색이 서정적이면서도 총천연색이다. 때로는 너무 감상적이어서 그 품위를 의심(?)받기도 했지만 자칫 지나치게 딱딱할 수 있는 클래식(음악) 속에 차이코프스키가 불어넣은 총천연색 감성은 대중의 인기와는 무관하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공헌이었다. 다만 ‘비창교향곡’과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감성을 최고로 드러낸 교향곡 5번에 대하여 폰 메크는 상당한 반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곡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오히려 지나친 과장으로 점철됐다는 (냉철한) 비판이었는데 5번보다 더 대중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비창 교향곡’을 듣고 (얼음 공주)폰 메크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매우 궁금하다. 두 사람이 모두 비창 발표후 곧 사망했기 때문에 진위는 알 수는 없지만 폰 메크가 사라진 뒤의 차이코프스키 가슴 속에 남겨진 허허벌판 속에는 오직 비창의 선율… 쓸쓸한 겨울과 삭풍이 불어닥칠 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비창’은 그 어떤 눈으로 보는 사진이나 겨울보다 더욱 매혹적인… 폰 메크와의 (잡을 수 없었던) 사랑과 감동을 만인에게 선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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