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매년 8월 17일은 중고품 업소의 날(National Thrift Shop Day)이라고 한다. 이런 날 굿윌(Good Will Store)에서 헐값에 나온 명품을 보게 되면 대박 보물을 찾은 느낌일 거다. 내 학부 전공인 고고미술사도 일종의 보물찾기다. 고고학과 미술사를 합친 분야로, 아주 오래된 “중고품”이자 보물처럼 귀중한 인류의 문화유산과 역사의 증거물을 찾아서 그 가치와 의미를 밝혀내는 역사학 분야다. 사실 내가 내 전공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교에서는 외울 게 너무 많아 등한시했고 졸업 후 미국에서는 전공을 바꾸면서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런데 2010년에 2년차 과후배인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 한국미술 큐레이터였던 김현정씨와 연결되면서 학부 전공과 관련된 전혀 상상도 못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런 반전을 가져온 사건의 발단은 2011년에 김현정 큐레이터가 내게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에서 9월에 있을 삼성 미술관 소장 분청사기 전시회 소개를 몬트레이 카운티 주류 미국인들의 동양미술 애호가 클럽에서 영어로 간단한 한국미술사 강연과 같이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였다. 겁이 덜컥 났지만 사명감에서 하기로 했다. 내 발표가 끝나자 나를 찾아오신 분은 8월 15일 칼럼에서 언급된 일제 강점기 마지막 주한 미국 총영사의 며느리셨다. 시아버지께서 한국에서 가져온 골동품들이 있다고 하셔서 김현정 큐레이터와 자택에 가보니까 구한말 특유의 미술양식으로 만든 자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결국 김현정 큐레이터의 감정과 주선으로 자개로 만든 반상 2점과 쟁반 1점이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에 기증되었고 그 중 2점이 2016년 4월 29일부터 10월 23일까지 미국에서 처음 열린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 한국 자개전에 전시되었다. 게다가 이 기증품들은 복원과정에서 그전에 알려지지 않은 재료들을 쓴 독특한 제작기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한국 자개미술사를 다시 써야 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그밖에 봉황, 불사조, 태극무늬들이 들어간 표면의 화려한 장식들은 외교관들에게 주는 선물로 특수 제작되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국외 소재 문화재재단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17년까지 국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문화재는 3만7천점쯤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큐레이터와 함께 발굴해낸 구한말 자개품들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재외 한국인들이 외국에 있는 한국문화재의 복원과 반환에 “눈을 부릅뜨고” 노력해야 한다는 아름다운 일깨움으로 널리 알리고 싶다.
<정혜선(몬트레이 국방외국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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