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의 친구로부터 이름만 알고 있는 비슷한 연배의 비보를 전해 들었다. 사인은 급성 심장 쇼크였다.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는 것인 줄 알지만 사십 대에 유언장을 쓰는 일은 낯설게만 느껴진다. 개인의 죽음도 두렵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 느끼는 죽음의 무게는 내가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남편은 인생을 더 잘 살아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유언장을 작성하는 일을 멀리하지 말아야겠다고도 한다. 죽음에 순서가 없는 것은 남편의 이야기만이 아닐 것이다.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죽음이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 같지만 죽음을 가까이할수록 우리는 삶에 더 진한 빛깔을 낼 수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일까?
‘어둠이 오기 전에’를 집필한 영화감독 사이먼 피츠 모리스(Simon Fitzmaurice)는 인생에서 춤을 추고 싶은 순간에, ‘운동뉴런증’이라는 희귀질환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몸이 서서히 굳고 호흡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아이 게이즈(eye-gaze)’로 회고록을 집필하고 다큐멘터리 영화 ‘It’s Not Yet Dark’를 완성했다.
줄리 입 윌리엄스(Julie Yip Williams)는 1976년 베트남 땀끼에서 선천성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수술을 받고 부분적으로나마 시력을 회복한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던 삼십 대 중반에 결장암 4기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는 그녀가 삶과 죽음의 사투를 벌이면서 어린 두 자녀에게 남긴 기록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는 젊은 나이에 폐암을 선고받고 그 이후로도 항암치료를 하면서 의사로서의 삶에 끝까지 충실했다. 항암만으로도 버티기 힘든 체력이었지만 하루라도 더 의사로 살고 싶어 했다.
책으로 만난 이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의 직업이나 남긴 회고록 때문이 아니다. 죽음조차도 성실하게 맞이하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의 삶의 자세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죽음은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하며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다루게 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오늘 마주하는 나의 시간표가 죽음 앞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 그 길 위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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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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