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롭힘, 병원 찾은 뒤 발견
▶ 피해 아동 고통 호소 못해
일요일 늦은 오후에 아들(10세) 친구 엄마한테 문자 메시지 한통이 왔다. 주중 방과 후에 자기네 집에 놀러보낼 수 있겠냐는 문자였다.
주말도 아니고 주중에 오라니…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된 일이 있었구나 하고 직감됐다. 유치원부터 제일친한 친구고 3년이나 연거푸 같은 반이라 나보다 더 얼굴을 자주 대했을터다.
혹시 싸웠나하는 걱정에 우리 가족 모두 산책을 핑계삼아 주중까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가보기로 했다.
벨을 누르니 친구 엄마, 친구, 나중에 아빠가 차례로 나왔다. 아들과 친구는 처음엔 조금 서먹해 하더니 이내 집안으로 같이 놀러 들어갔다. 괜한 오해였구나 하는 순간 친구 부모로부터 조금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가 반에서 한 아이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들 친구가 작년말쯤 밥도 잘 안먹고, 학교에도 가기 싫어하는 등 집에서 전에 없던 이상 행동을 보여 결국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의사의 입으로부터 괴롭힘 피해증상이라고 진단받았다고 한다.
내 가슴까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도 물어보니 이미 올해초 학교에서는 친구괴롭힘과 관련, 한바탕 소동이 있은지 오래다. 며칠뒤 이와 매우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소아과 전문의의 기고로 ‘병원에서아동 괴롭힘 피해 사례가 확인된다'는 내용의 기사다.
한 아이가 부모와 함께 소아과 전문의를 찾았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부모와 달리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편안한 모습이었다. 담임 교사가 작성한 보내온 두터운 서류 뭉치는 아이가 행동 장애라는 한 단어로 결론지어졌다. 학교에서 퇴학 직전에 놓인 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진해 보였다. 원인을 파악하려고 여러가지 질문을 했지만 마지막 질문을하기 전까지는 매우 정상적인 아이라는게 소견이었다. “혹시 학교에서 누가 놀렸니?”. 아이의 대답은 “예”였다.
가해 아이가 피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멍청하다고 놀렸다는 것인데 부모 표정은 충격 그 자체였다.
2006년 조사에따르면 괴롭힘을 당하는 아동 가운데 정신적, 육체적 이상 증상을 보이는 비율이 매우 높다.
복통, 야뇨증, 수면 장애, 식욕 부진,불안과 초조, 우울증 등의 증상이 괴롭힘을 당하는 아동들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2007년 덴마크에서 실시된 조사에서는 괴롭힘 피해 아동들의 두통, 위장 장애, 초조증상, 수면장애 관련 약물 복용 비율 높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병원을 찾은 아이는 간접 괴롭힘 피해까지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 아동이 다른 아동들에게도 피해 아동을 괴롭히라고 지시했는데 간접 괴롭힘까지 당하는 아동에게서는 높은 우울증 비율과 함께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가해 아동 중에는 소위 ‘비행 아동’이 많고 청소년기로 연령대가 높아지면 피해 청소년은 물론 가해 청소년중에서도 우울증, 자살 충동, 자살 시도 등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해 아동 역시 관심과 치료가 절실한 피해자인 셈이다.
더욱 놀란 것은 아이가 병원을 찾아 괴롭힘 피해 사실에 대해 입을 열 때까지 담임 교사나 부모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자녀의 괴롭힘 피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
는 부모는 해당 부모뿐만이 아니다.
2004년부터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자녀나 학생의 괴롭힘 피해를 파악하지 못하는 부모나 교사의 비율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괴롭힘 가해 아동을 자녀나 학생으로 둔 부모, 교사중에서는 가해 행위에 대한 언급하는 부모는 고작 약 33%, 교사는 약 50% 밖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괴롭힘 피해 아동의 대부분이 이미 자체적인 질병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아동들이라는 것이다. 음식 앨러지로 고생하는 아동 중 약 31.5%는 앨러지 음식으로 놀림을 받고 심지어 해당 음식을 강제로 먹이려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괴롭힘 피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이상 행동으로만 여기는 부모가 절반이 넘는다. 안타깝지만 괴롭힘 행위나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 증상을 멈추게 할 처방법은 없다. 가장 좋은 예방법과 치료법은 가해 아동이든 피해 아동이든 부모와 자녀간의 원할한 의사소통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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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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