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가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뜨거운 화제 중 하나는 손흥민의 LA 이적이다. 스포츠 팬이 아니더라도 농구와 야구, 골프에 이어 축구가 현지인의 관심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벌써 그의 경기 티켓이 비싸게 리세일된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다. 그만큼 ‘국민 영웅’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파급력은 크다.
그런가 하면,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10월 LA 연주회 역시 티켓 오픈과 동시에 이미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이 전하는 감동과 여운은 같은 결을 지닌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 사회가 품은 꿈과 자부심을 투영하는 ‘국민 상징성’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베토벤 시대에도 음악가는 오늘날의 스포츠 스타처럼 국가적 상징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격랑 속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단순한 예술을 넘어 민족적 자존심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했다. 시대는 변했지만 한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파도는 여전히 강력하다. 오늘날 손흥민과 임윤찬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빛 속에는, 19세기 빈 시민들이 영웅을 맞이하던 설렘이 겹쳐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국민 영웅’들이 남가주라는 무대에서 자주 포착된다는 것이다. 이곳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공연과 경기를 위해 반드시 거치는 도시이자, 한인 커뮤니티가 활발히 뿌리내린 곳이다. 덕분에 스포츠 팬과 음악 애호가는 물론, 같은 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는 현지 교민들에게는 자부심을 갖게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 8월3일 CJ가 주최한 KCON 마지막 날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미야오, 화사, 키 등 글로벌 신인 아이돌과 연륜 있는 아티스트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메인 스폰서가 ‘올리브영’이었다. 이전에는 스마트폰 제조사나 항공사가 주도하던 스폰서 자리에 K-뷰티 유통사가 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를 통해 K-뷰티의 세계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한류는 더 이상 한 장르나 산업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악, 패션, 뷰티, 스포츠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마치 나비효과처럼 더 큰 파장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대형 스타와 국제 브랜드만이 이 흐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남가주에는 이미 훌륭한 현지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들의 이름이 세계적 영웅들의 후광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규모 이벤트로 몰린 관심이 끝난 뒤, 그 에너지가 지역 사회의 창작 생태계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유명 인사의 일회성 방문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과의 지속적인 협력으로 ‘문화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국민 영웅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결국 그 분야 저변 인구가 넓어지고, 그 속에서 치열한 경쟁과 성취를 거쳐 올라온 인물들이다. IMF 시절 시원한 나이스 샷으로 국민에게 위로를 준 박세리는 ‘세리 키즈’ 신드롬을 만들었고, 그 세대는 세계적인 골퍼로 성장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수많은 후배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길을 열었고, 지금의 많은 피아니스트들 앞에는 백건우가 있었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한인 소프라노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작곡가 진은숙은 ‘작곡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수상하며 역사를 새로 썼다.
이런 영웅들이 더 많이 나오려면 꿈나무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 “어차피 안 될 거면 관두자”는 마음 대신, 자부심과 목표를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꼭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주변의 작은 음악회에 가고, 전시장을 찾고, 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 모두 훌륭한 인재를 응원하는 길이다. 이는 곧 우리의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다음 세대에 남길 문화 유산이 된다.
따라서 이들이 활약하는 데 있어 현지인들의 지원이 무척 중요하다. 시합이든 공연이든, 많이 찾아가고 많이 응원하자.
결국 손흥민의 드리블, 임윤찬의 건반 소리, KCON의 화려한 무대는 모두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 더 많은 지역 예술가와 창작자들의 얼굴도 함께 담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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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ㆍYASMA7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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