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더 감염 추정 웨스트나일 모기 바이러스 중 가장 치명적
▶ 뎅기열, 폐타이어 무역 따라 전파

지카 바이러스 매개체인 이집트 숲모기.
지난 2003년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내는 ‘신종 전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 저널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 그리스를 지배하고 페르시아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모자라 인도까지 내달렸던 알렉산더 대왕이 웨스트나일 뇌염에 걸려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었다.
32세 나이에 이란 고원을 정복한 뒤 인도 인더스 강에 다다른 알렉산더 대왕은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자 기원 전 323년 바빌론(현재 바그다드 부근)으로 돌아와 2주간 앓다가 돌연 사망했다. 플루타르크는 그의 전기에서 “알렉산더가 바빌론 성벽에 가까이 왔을 때 수많은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면서 서로 쪼아댔다. 그 중 일부는 알렉산더 앞에 떨어져 죽었다”고 적었다.
모기는 인류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해 온 오랜 적이다. 지카 바이러스를 비롯해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황열병,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등 치명적인 감염병들을 옮기는 매개체가 바로 모기다. 지금도 해마다 7억명의 사람이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에 걸리고 이 중 100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모기 매개 전염병 중에서도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는 특히 치명적이다. 1999년 가을 뉴욕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그 해 8~9월 뉴욕 브롱스 동물원에서 병으로 죽은 까마귀는 수천 마리를 헤아렸다. 칠레 홍학, 가마우지, 대머리독수리, 까치, 오리, 꿩 등도 죽어나갔다. 조류 대량 폐사의 원인인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를 퍼뜨린 매개체는 ‘살인모기’라 불리는 빨간집 모기였다.
이로부터 몇 달 뒤, 아프리카에서 뉴욕으로 날아온 이 흡혈곤충은 이번엔 뉴욕 시민들의 피를 빨기 시작했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는 야생조류 이동에 따라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갔다. 1999년 이후 10년 동안 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 2만9,000명에 달했고, 이 중 1,131명이 사망했다.
웨스트나일 환자는 8~9월에 집중됐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면역력이 약한 60대 이상 노인들이었다. 뉴욕시를 중심으로 반경 80km로 제한됐던 바이러스 침입은 미 대륙 전체로 확대됐다. 현재 미국 내 웨스트나일에 따른 사망자는 연간 300명에 이른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는 1937년 아프리카 우간다의 웨스트나일 지역에서 처음 발견됐다. 웨스트나일은 우간다에서는 어릴 때 걸렸다가 지나가는 가벼운 풍토병 정도로 여겨지지만 미국 뉴욕에 상륙해서는 야생조류를 몰살시켰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생물학자들은 이에 대해, “과거 식민지를 개척하던 제국주의 시절 유럽인들이 천연두와 홍역을 아메리카에 퍼뜨려 원주민을 초토화시킨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한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면역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러스 침입을 받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에서 사망한 것도 바로 이 바이러스가 까마귀를 먼저 몰살시킨 후 사람에게 전파됐기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추론이다.
웨스트나일 뇌염을 전파하는 빨간집 모기는 웨스트나일 뇌염의 자연 숙주인 야생조류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 흡혈을 통해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소화관 내에서 증식해 최소 100만개 이상 바이러스를 만든다. 이후 모기들은 다시 조류를 흡혈할 때 타액을 통해 바이러스를 전염시킨다. 인간은 이들 모기에 의해 흡혈되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모기는 알을 낳기 위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흡혈을 한다. 그러니까 수컷은 흡혈하지 않는다. 흡혈은 평균 3일에 1회 정도하는데 그때마다 알을 낳는다. 이근화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알에서 번데기로, 다시 유충에서 성충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이뤄져야 모기들이 바이러스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모기 매개 전염병인 뎅기열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폐타이어’ 무역 때문이다. 1980년대 세계 재생 타이어 산업의 중심지였던 미국 휴스턴을 중심으로 뎅기열을 전파하는 흰줄숲모기(아시아타이거 모기)가 텍사스 등 동부 지역을 장악했다.
흰줄숲모기는 폐타이어를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박스와 함께 알바니아, 이탈리아, 프랑스, 나이지리아, 브라질 등에 침입했다. 1970년대 뎅기열을 걱정하던 나라는 9개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뎅기열에 점령된 국가만 100개국이 넘고, 20억 인구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우려는 지금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지구온난화 흐름이 치명적인 모기에게 힘을 더욱 실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100년 사이에 지구 온도를 평균 1도 정도 상승시켰다. 과학자들은 이 미묘한 변화를 ‘1도 요인’(one-degree factor)이라 부른다. 1도 요인을 가장 반기는 생물이 바로 모기다. 겨울이 따뜻하고 짧아진 덕분에 모기는 예전보다 더 많은 먹이를 소비하면서 훨씬 빠른 속도로 번식이 가능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향후 50년 안에 뎅기열 감염위험이 있는 사람 수가 30만명에서 160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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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입국 터미널에 지카 바이러스 검역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 “소두증과 달라 치료제 있다”
최근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까지 환자가 발생한 지카 바이러스가 공포감을 주는 이유는 소두증, 길랑바레 증후군 같은 심각한 신경계 증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지카 바이러스는 신경계를 주로 침범하는 신경친화성 바이러스(neurotropic virus)로, 증상이 있는 감염자의 0.85%가량에서 신경계 합병증 발생이 보고되고 있다.
소두증은 지카 바이러스에 따른 출생결함의 대표적 증상이다. 신생아 머리 둘레가 32㎝ 이하(정상 34~37㎝)인 증상이다.
브라질 보건당국이 지난해 말 이후 보고된 소두증 의심환자 4,783명 중 1,113명을 조사한 결과 404명에서 지카 바이러스와 연관성이 포착됐다. 또 소두증을 진단 받은 브라질 임신부의 태아와 아기 15명의 양수, 뇌, 척수액에서 지카 바이러스 또는 그 항체가 검출됐다. 미국 하와이의 한 여성이 브라질 여행 중 지카에 감염된 뒤 소두증 아기를 출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 발생 간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것이지만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어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카 바이러스가 태아에 감염되면 소두증 이외에도 망막 이상 등 증상이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현재까지 지카 바이러스 치료제와 예방백신이 없는 가운데, 해외 다수 제약사 등이 치료제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과 유전자 조작 모기를 이용한 퇴치법 등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길랑바레 증후군은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긴 탓으로 신경세포의 축삭을 둘러싼 ‘수초’라는 절연물질이 벗겨져 발생하는 급성 마비성 질환이다. 세계적으로 인구 10만명 당 1~2명꼴로 발병하며 소아보다 성인이 더 잘 걸린다. 운동신경 이상과 가벼운 감각 이상 등 증상이 나타난다. 발병 초기 다리의 먼쪽부터 힘이 빠지다가 점차 마비가 진행된다.
길랑바레 증후군은 치료제가 있어 완치가 가능하다. 대표적인 치료법은 고용량의 면역글로블린 정맥주사와 혈장분리 교환술. 민주홍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환자의 약 85%는 수개월에서 1년 이내에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김병조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호흡기 질환이나 장염 등 단순한 감염 증상으로 오인하다 뒤늦게 신경과를 찾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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