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고향을 등지고 이 미국이라는 신세계로 이주 해왔다. 그 이민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는 버려야 했던가? 하지만 그 상실의 고통만큼 힘들었던 것은 한국을 떠나겠다는 마음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인생에 중요한 획을 긋게 되는 그 결정이 확고하지 않았다면 정든 보금자리에서 새 삶터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도착하니 하루 아침에 벙어리요 귀머거리 되었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익숙했던 언어소통수단을 먼저 잃게 된다. 귀는 열려있어도 단어의 뜻만이 아니라 깔려있는 문화를 알아야 말속에 숨은 뜻을 이해할 수 있으니 문화정서적 차이는 평생을 두고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하고픈 말 못하는 답답함, 말이 통하지 않아 바보가 된듯한 수치감도 묵묵히 감당하면서 김치젓가락 문화에서 스테이크 포크문화로 계속 적응해가는 미국화의 진로이다. 얼마 전 헬스장 스팀룸에서 옆에 앉아있던 낯선 사람이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하고 물었다. “그래요” 하는 순간 “아이구 반가워요”하면서 나의 팔뚝을 잡았다.
미국에 온지는 6개월쯤 되었지만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나면 혼자서 새장에 갇힌 것 같고 미국사람들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두려워 사람기피증까지 생겼다며 영어의 두려움을 처음 만난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 부인의 이야기 속에서 이민 초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낯선 미국 땅에서 냉정한 현실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이민가방에 담아온 추억상자를 열어보면서 고향에 두고 온 따뜻한 삶의 동료들과 친숙했던 생활터전을 그리워했었다. 이국 땅에서 겪는 서러움과 좌절을 다 토해 놓았던 샌프란시스코의 안개 낀 바다는 말없이 친구가 되어주었고 젊음이 박동하듯 우렁찬 파도소리는 방황하던 내 영혼을 잠재우고 마음의 분노도 쓸어 내렸다. 태평양바다는 언제나 나를 치유시켜주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또다시 일어새우는 묘약이었다.
이민자들은 대단한 적응력과 새로운 변화를 직면 할 수 있는 강인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저력은 무엇이던지 해 보겠다는 굳힘이요 마음의 자세이며 이민오기로 결정했던 그 정신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고향은 떠났지만 그 친밀한 옛 것은 결코 소멸되지 않고 새로운 경험에 접목이 되어 고목에 새순이 뻗어나듯 이민정신은 우리 영혼의 지문으로 각인되어 삶의 일부에서 긍정적 강점으로 엿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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