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구 층계에 진을 친 노숙자에게 먹거리를 건네주었는데 그것을 받지 못하고 손을 더듬는 것을 보고서야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린 어느 ‘선한 사마리안 여인’이 병원을 찾아왔다.
실어증과 시력상실로 죽어가는 노숙자를 치료해 달라고. 그 따뜻한 마음이 동기가 되어 그 노숙자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서서히 말을 시작했고 정밀 안과검진 후에 백내장 수술로 잃었던 시력도 되찾았다.
특이한 일은 그 환자가 눈이 잘 보인다고 말한 뒤에도 벽을 더듬거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아도 오랫동안 습득한 행동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엄연하게 보였다.
이 환자하고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시력은 좋지만 마음의 눈을 감고서 장님의 습관적 한계 속에서 머무는 경우도 생각해본다.
갓난아기들이 첫걸음을 띄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들은 모두 신기롭고 경이로워 환성을 올리며 아이들을 격려하고 부추긴다. 또 말을 시작하면 아이가 완전히 발음하도록 되풀이 해주며 행동과 언어의 발달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한다. 그러나 청소년이 된 자녀가 심리적 갈등으로 발버둥 치며 괴로워할 때 그런 성장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부모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대학생 토니의 생각은 질서정연하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농구가 적성에 맞는다고 아버지에게 얘기했다. 아버지의 대답은 간단했다. “부모는 힘들게 일하는데 무슨 운동이냐,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토니는 그 때 틀리지 않는 듯한 아버지의 말을 차마 거부하지 못했다. 그리고 4년 동안 집에서 학교로 말없이 오갔다. “이제 아버지는 너는 왜 친구도 없느냐고 묻네요.” 그 질문은 이율배반적이라 아버지와 마주치기 싫어서 집에도 가지 않는다.
운동을 통해 팀워크를 배우고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회성도 키우는 계기를 잃었다는 토니의 분노가 노출된다. 대학을 가니 모두 그룹워크위주인 공부라 너무 힘들고, 한편 하고 싶은 것 제대로 못해본 토니는 자라면서 계속 꺾어졌던 것은 자신감뿐이라 불평했다.
아직도 공부위주의 옛 습관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가. 우리가 자란 시절의 교육과 현재의 교육방법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옛 것을 고집하기 전에 우리자신의 안목의 한계를 넓히고 새로운 교육시스템에 귀를 기우려야 하지 않을까. 습관적 더듬이로 감지하는 눈뜬장님은 마음의 눈을 뜰 때에 가서야 비로소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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