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다업무로 피고가 변호사 얼굴 못 보는 경우도 있어 도입 50년 맞아 개선책 논의…“민사사건도 제공해야”
미국에서 형사사건 관선변호사 제도의 도입 계기가 된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이번 주로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63년 3월18일 ‘기드온 대 웨인라이트’ 사건에서 대법원은 모든 주 정부는 변호사를 고용할 여력이 없는 피고인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반드시 법률 고문을 제공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미국 사법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이 판결로 관선 변호사제가 정립돼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줬으나 현실적으로는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선 변호사들의 법률 서비스 질은 지역과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개는 관선 변호사 1인당 맡는 사건과 업무량이 턱없이 많으며, 피고가 변호사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실정이다.
빌리 제롬 프레슬리는 조지아 교도소에 17개월 간 수감되었었다. 2,700달러의 자녀양육비를 체납한 죄였다. 그에겐 전과가 없었지만 변호사도 없었다. 지난 가을 볼티모어에선 칼 하이머스(21)가 경찰관의 눈에 레이저를 비친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7만5,000 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되었다. 그 역시 체포 전과가 없었지만 변호사도 없었다. 작년 여름 뉴저지 주 웨스트 오렌지에 거주하는 월터 블로스(89)는 43년간 살아 온 아파트에서 소유주와 다툼을 벌인 끝에 퇴거 통보를 받았다. 법정소송으로 비화되었지만 그에게도 변호사가 없었다.
더구나 기드온 판결은 주택차압이나 실직, 배우자 폭행, 자녀 양육권 같은 민사사건엔 해당되지도 않는다. 현재 상당수 주와 카운티는 주요 민사사건과 일부 형사사건에서 빈곤층에게 관선변호사를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제공하는 주에서도 그 수요를 따라가기 힘든 실정이다. 그 결과 너무나 많은 법대 졸업생들이 일을 못 구하고 있는 한편에선 너무나 많은 미국민들이 변호사가 없어 곤경에 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유무죄를 떠나 형사 사건에서 경제적으로 변호사를 제대로 고용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의회의 기금지원으로 저소득층에 변호사를 제공하는 법률서비스단체에 따르면 법적 도움이 필요해도 돈이 없어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등 빈곤층의 80%가 도움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방상원 법사위의 패트릭 리히 위원장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여전하다”면서 관선변호사들이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는 데다 “경험이 없고 결국에는 피고에게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주 정부가 가난하여 변호사를 둘 수 없는 피고에게 변호사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은 형사사건에 한정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미네소타 주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역임한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은 민사사건에도 관선 변호사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다. 그는 소송 당사자에겐 집과 가족을 잃고 정신병원으로 잡혀갈 수 있는 등의 민사사건이 형사사건과 별 차이가 없다며 이런 사람들에게도 관선 변호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률서비스 접근 가능성 면에서 미국은 98개 국가 중 66위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법 앞에서의 평등이란 수입에 관계없는 평등을 의미하지만 이 나라에선 개인 대 정부라는 개념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고 은퇴한 판사 얼 존슨은 개탄했다.
상당수 주에선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4인 가족 연소득 3만 달러도 지원을 받기엔 소득이 높다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피고들이 변호사를 못 구해 스스로 변호에 나서는데 필요한 증거제출을 못하고 법적 절차에 오류를 빚는가하면 증인 반대심문에 서툰 실정이라고 판사들은 전하고 있다.
‘인권을 위한 서든 센터’는 조지아 주에서 자녀양육비 체납 등 민사사건에도 관선변호사 보장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당사자 중 한명이 러셀 데이비스다. 해군 제대군인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그는 양육비 체납으로 2번 수감되는 와중에서 아파트에서도 쫒겨나고 자동차도 잃었다.
조지아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수요공급 불균형이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주 변호사의 70%가 아틀랜타 지역 내에 살고 있는데 반해 빈곤층의 70%는 그 지역 밖에 살고 있다. 6개의 카운티에는 변호사가 단 한명도 없으며 1~2명에 불과한 카운티도 수십개나 된다.
빌리 프레슬리는 관선변호사의 도움으로 석방된 후 취직을 하여 양육비를 보내고 있으며 칼 하이머스의 7만5,000 달러 보석금 역시 관선변호사의 도움으로 200달러로 대폭 삭감되었고 아파트 퇴거에 직면했던 89세의 월터 블로스도 현재 항소 중이긴 하지만 계속 아파트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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