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로리다에서 알래스카까지 중년의 3남매‘효도여행’
몇 년 전 상처한 90세 치매아버지가 플로리다에서 알래스카로 이사해야 했을 때 아들인 LA타임스의 기자 존 M.글리오나는 치매노인이 감수해야할 푸대접과 불편을 고려해 항공여행 대신 5,000 마일의 대륙횡단 자동차 여행을 택했다. 늙고 병들 아버지를 돌볼 두 누나와 함께 떠난 중년 3남매의‘효도여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LA타임스는 글리오나 기자의 12일간 여정의 단면을 지난 5일자로 보도했다.
12일 간의 긴 여정, 눈보라 속 발 묶여 다투다 추억 떠올리며 화해
강행군 일정에 후회와 불평, 아버지의 행복한 모습에 눈녹듯 사라져
렌트한 시티 버스 크기의 RV를 타고 웨스트 텍사스의 평원을 가로지르며 샌안토니오 인근에 닿았을 때 겨울폭풍이 휘몰아쳤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 벅 오웬스의‘ 트럭 드라이빙 맨’이 어둠 속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긴급뉴스가 나왔다 ‘: 눈과 강풍으로 인터스테이트 10번 폐쇄’ , 우리가 있는 곳에서 별로 먼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정이 빡빡한 우리는 계속 달렸다. 소노라에 들어섰을 때 마치 몰려올 군대의 정찰병처럼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곧 눈보라가 불어 닥쳤고 하이웨이는 눈밭으로 변했다.
조수석에 앉은 페기누나와 함께 나(글리오나 기자)는 앞이 안보이는 심연을 응시했다. 다음 출구까진 족히 몇 마일은 남은 듯했다. 앞 차창 와이퍼까지 딱 눈높이에서 얼어붙어버려 앞길을 보려면 웅크리고 몸을 낮춰야 했다.
패트 누나가 돌보던 아버지가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의 기침은 멈출 줄을 몰랐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 세 자녀가 노쇠해진 아버지를 모시고 바하마에 있는 그의 옛 집에서 알래스카의 새집까지, 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5,000마일의 긴 여정에 나선 것이다.
휴가를 떠나는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로 설레었었다. 1970년대 담배광고의 한 장면처럼 쾌적한 자동차 여행을 하며 아버지에게 관광명소들을 설명해드리며 웃고 즐거워하는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이번 여행은 한 가족으로서의 우리 유대를 강화시켜줄 것이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텍사스 벌판에 고립된 채, 14시간 계속 운전에 진이 빠진 채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을!” 존 스타인벡이 말했었다 :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우리 RV의 양옆에는 메인 해변에서 카약을 즐기는 시람 들부터 서부에서 승마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때로는 기분이 영 나쁜 늙은 아버지와 2마리의 개, 그리고 어머니의 유골이 든 항아리까지 싣고 길을 나선 중년의 3남매와 비슷한 모습은 없었다.
존과 진 글리오나 부부는 2남5녀의 7남매를 키웠다. 현재 제일 맏이는 64세, 막내는 50세다. 2008년 79세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는 61년을 함께 해온 반려자를 잃은 충격과 슬픔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했다. 치매증상이 시작되었던 아버지는 자립능력을 상실했다. 집을 처분하고 패트 누나네 집으로 들어갔는데 최근 해양엔지니어인 매형 그렉이 알래스카 켓치칸에 새 일자리를 얻게되어 결국 아버지도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1월 초 먼저 간 그렉은 이미 일을 시작했고 뒤이어 우리가 대장정에 나선 것이다.
우린 자동차 여행을 택했다. 장거리 항공여행은 아버지에게 너무 힘들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불편한 아버지가 푸대접을 받을 것도 우려되었다.
아버진 알래스카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정신이 선명치 못한 날엔 자신이 책에서 읽은 것과 실제경험이 뒤엉키는지“ 난 알래스카에 가보았고 거기에 대해 충분히 알고있는데 이글루와 빙산밖에 없는 그 멀고 추운 곳에 왜 가야하느냐”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먼 길을 누가 운전하느냐고 묻기도 했고 렌트해온 RV를 보고는 며칠 동안이나 저 상자에 머물러야 하느냐, 화장실은 있느냐, 개수대에 소변을 봐야하느냐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14만 마일이나 이미 달린 RV는 낡고 덜컹거려 출발부터 우리 마음을 불안케 했다.
RV같은 큰 차를 한 번도 운전해본 경험이 없는 나는 종종 신통찮은 운전 실력으로 누나들을 기함케 했고 차안엔 서로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길은 빙판인데 트래픽은 짜증날 만큼 극심했던 하이웨이에서 거의 앞차를 들이받을 뻔한 적도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핸들을 움켜잡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아버지가 다치셨을까, 생각하는 순간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호수에서 보트를 타가 내가 갑자기 뛰어내리는 바람에 아버지가 물레 빠졌을 때 누나들이 엄마에게 달려가며 소리쳤었다 : “엄마, 조니가 아빠를 죽이려 했어요!” 다행히 RV는 무사히 멈추었다. 옆자리에 탔던 누나는 굳은 표정이었지만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전이나 개 산보 시키는 일 등 사소한 것에서도 우리는 말다툼을 계속했다. 친구에게라면 참았을 말을 가족에게는 퍼붓는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때로‘ 가족’이라는 것은 실제보다는 생각 속에서 더 좋은 듯하다.
애리조나에선 모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메사에서 낡은 RV를 신형으로 바꿔 탔다. 어머니의 유골 항아리를 조심스럽게 운반하던 패트 누나가 말했다“. 엄마는 늘 알래스카에 가보길 원하셨지…이렇게 가게 되다니” 누나의 말은 우리들 가슴에 함께 와 닿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기억하는 듯 지나간 옛 노래들을 나직나직 불렀다.
오리건 유진에 도착했을 땐 아버지는 정신이 드셨는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에게 “미성년인 것 같은데 신분증 좀 볼까요”라며 농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 테이블 곁을 지나는 한 노년여성의 팔을 움켜잡고“ 정말 멋진 신사분과 함께 오셨군요”하고 느닷없이 말했다. 그녀는 움찔 놀란듯했으나 공손히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함께 온 사람은 여성이었다.
플로리다를 떠난지 12일 후 우리는 안개 자욱한 켓치칸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그렉은 임대한 집에 며칠 전 한 밤중 화재가 발생해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알려주었다. 힘들게 강행한 우리의 긴 여정에 한 가지 보람은 있었던 셈이다. 화재로부터 아버지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내내 다투면서 왔지만 우린 그의 자녀들이란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그날 밤 침대에서 반쯤 잠든 아버지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까 좋다. 좋아, 정말 좋다”
우리 모두에겐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 L A 타 임 스 - 본보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