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사건을 들라면 대공황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 제1차, 제2차 대전 등 많은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이는 참전 용사와 가족을 제외하고 미국인의 일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공황은 이로 인해 수천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그 기간도 10년이 넘었다. 대공황으로 피해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노인들의 참상은 심각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소셜 시큐리티였다. 193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주도로 ‘소셜 시큐리티 법’이 제정되면서 65세 이상 노인들은 안정적인 소득원이 마련돼 최소한도의 경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빈곤만이 아니었다. 젊은이들은 병에 걸리는 일도 별로 없고 걸려도 쉽게 낫지만 노인들은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잦고 큰 돈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건강 보험료도 젊은층에 비해 3배나 비싸 60년대 초까지 65세 이상 노인의 40%는 보험이 없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중병에 걸리면 집안이 거덜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린든 존슨은 1965년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의 하나로 소셜 시큐리티 법을 개정해 65세 이상자에게 자동으로 건강 보험 혜택을 주는 메디케어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로써 아픈 노인들도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는 중요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프로그램이지만 시초부터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것은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비용 부담자가 다른 사람들이란 점이었다. 일례로 역사상 처음 소셜 시큐리티 번호를 발급받은 존 스위니는 1936년부터 1978년까지 꼬박꼬박 소셜 시큐리티세를 냈지만 그해 61세로 죽는 바람에 평생 돈만 내고 한푼도 받지 못했다.
반면 첫번째 수혜자인 아이다 메이 풀러는 1937년부터 1939년까지 3년 가까이 총 24달러 75센트의 소셜 시큐리티세(지금 가치로 510 달러)를 내고 1939년 65세로 은퇴한 후 1975년 죽을 때까지 2만2천889달러(지금 돈으로 51만3천700달러)를 받았다. 이처럼 극과 극의 운을 타고 나기도 힘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받는 소셜 시큐리티는 자기가 낸 돈을 돌려받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자기가 낸 돈은 이미 오래 전 은퇴한 노인들이 다 가져갔고 지금 받는 것은 지금 일하는 근로자들이 페이롤 택스로 낸 돈이다. 이런 시스템은 1930년대처럼 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받는 사람은 거의 없는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받는 사람은 늘고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출산율이 떨어질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1960년대까지 근로자 4명이 은퇴자 한명을 부양하던 것이 지금은 2.7명으로 떨어졌고 머지 않아 이 숫자는 2명으로 줄 전망이다. 거기다 현재 미국 여성 1인이 출산하는 자녀 수는 현상 유지에 못미치는 1.66명에 불과하다. 이민이 없다면 미국도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셜 시큐리티 당국은 최근 소셜 시큐리티 펀드가 작년 예상보다 1년 앞당겨진 2033년, 메디케어 펀드는 3년 앞당겨진 2033년 바닥이 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렇게 된 것은 연방 의회가 공무원 노조 눈치를 보느라 ‘소셜 시큐리티 공정법’을 통과시켜 주와 지방 정부 공무원 혜택을 늘려준데다 의료 비용이 예상보다 더 많이 지출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8년 동안 의회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소셜 시큐리티는 23%, 메디케어는 11% 자동 삭감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혜택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리거나 빚을 늘려야 하는데 어느 쪽도 인기없는 일이다. 인기 없지만 필요한 일을 해도 부족한 판에 공화당은 노인표를 얻기 위해 소셜 시큐리티에 대한 감세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 안이 통과되면 세수는 줄고 국가 부채가 늘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현재 소셜 시큐리티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1/5에 가까운 6천900만명에 총 수혜액은 1조 6천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받는 혜택이 어느날 갑자기 삭감된다면 그 충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민주 공화 양당의 공동 책임이다. 과거 공화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척이라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민주당은 “할머니를 벼랑 끝으로 떨어뜨리려 한다”고 정치 공세를 펴며 극력 반대해 무산시켰다. 이제는 공화당도 아예 해결하려는 척조차 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미국이라는 배는 사회 복지 기금 파산이라는 빙산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미국의 앞날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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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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