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글을 쓰지만,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담임선생님께서 독후감숙제라는 것을 내주셨다. 책을 읽어 내용을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던 시절, 책 한권을 다 읽고 감상을 써오라고 하시니 그것이얼마나 막막했던지! 겨우 겨우 책을 다 읽은 끝에 원고지를 앞에 두고 연필만 쥐고 있던 나의 모습. 밤새 원고지에 무엇인가를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혼자서 끙끙대고, 또 답답한 마음에 울기도 하다가, 결국 마지막 문장을 “정말 감명 깊은내용이었다.”라는 그 당시 가장 진부한 표현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학교에 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요즘 모국어가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쓰려고 하니 더더욱, 어린 시절 글을 쓰면서 힘들어 했던 때가 떠오른다.
아버지께서는 늦공부를 하시느라, 어머니께서는 일을 하시느라 바쁘셨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옆에 두고 가르쳐 줄 수는없었다. 어느 날, 글을 가르쳐달라고 하는 나의 말에, 아버지께서는, 한지에다가 붓글씨로,“가나다라마바사...가갸거겨고교구규그니…”이렇게 한글의 모든 조합이 담긴 큰 차트를 만들어 주셨고, 그 옆에다가 한문으로다음과 같은 글 한 귀를 더해 주셨다. “인십기천(人十己千).”
아버지께서는 중용에 있는 어떤 뜻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때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여섯 살 즈음이니,어린 마음에 나는 그것을 하루에 천 번을 읽으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생각해보면, 그때의 천이라는 숫자는 나에게 그냥‘많이’ 라는 뜻이었다.) 날마다 그 차트가 붙어있는 벽에 앉아서 ‘가갸거겨고교구규그니…나냐너녀노뇨누뉴느니’ 를 읽고 또읽었다. 큰 소리로 빨리도 읽고 느리게도 읽고, 놀면서도 장난을 치면서도 하루에 ‘많이’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열심히 외웠던그 때. 그리고 ‘인십기천’은 내 삶에 있어서 배움의 지표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어느 신문에 실린 아버지의 글에서 ‘인십기천’을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자신을되돌아볼수록 흠과 모자란 점 끝이 없으니 남들과 시비(是非)를 논할 겨를이 어디 있을까? 이제야 생각뿐이지만 여기에 이르게되었다. 게다가 어리석고 둔한 것은 어릴 때나 매한가지인가? 인십기천(人十己千)이라고 했다. 그 무엇이 되었던지 여느 사람보다 천 배를 노력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대금 연주자로서 평생을 공부하고 연주를 해 오신 아버지께서 지금도항상 자신을 돌아보면 흠과 모자람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신다고 하는 글이 마음 깊이 다가온다.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자신은 백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자기는 천 번을 할 일이다.” 이제야 다시 그 본래의의미를 새기게 되지만, 진실로 이것은 남과의 비교의 선상에서 하는 말이 아닌 듯하다.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겸손하게배움을 놓지 아니하는 마음. 이 마음이 바로 중용에서 말씀하신 군자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어느 때보다도 경쟁의 삶이 치열한 때, 학교 교육에 있어서 남과의 비교 선상에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 안의 새로움을익혀가고 배워가는 즐거움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교육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것 같다. 오늘도 배움에 있어서는 항상 나의모자람과 둔함을 느끼면서 어린 시절 글을 익히고 배우던 때를 생각하면서 책을 펼친다.
원불교 샌프란시스코 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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