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31번지를 사랑하는 똘똘이 엄마. 특이한 분이다. 평생 직장에 다닌적도 없고,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그러나 옛것, 우리것을 귀하게 여기며, 한옥을 무지 사랑한다.
아마도 가회동 내의 한옥은 안들여다 본 집이 없을 정도로 극성스럽기도 하다.
가회동으로 처음 이사를 오던 날, 짐을 막 부리고 있는데 똘똘이 엄마가 고개를 들이 밀며 궁금해 한다. 개량 한복 바지에 고무신을 신고 있던 내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며 그 날 부터 우리집 단골 손님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한옥 원래의 모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보다 실용적으로 공간 활용을 할 수 있을지가 똘똘이 엄마의 그날 그날의 화두이다. 살고있는 한옥의 옛 모습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려고 방문이나 창문도 집에 걸맞게 고재로 짜서 맞추어 달고, 부엌문도 여닫이 문에 빗장을 지르는 문으로 달았다. 방에서 부엌으로 연결되는 작은 미닫이 문이 있지만 사람이 드나들기에는 좁아서 추운 겨울에도 방문을 열고 나와 부엌을 드나들어야 하지만 추위와 불편함도 한옥에 사는 멋이라고 한다.
옛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골동품과 도자기를 수집하고 차도 즐긴다. 양산 통도사 근처에 도요가 있는 신용균씨의 도자기를 무척 좋아하여 가마에서 도자기 나오는 날이면 직행 버스를 타고 가서 용돈을 탈탈 털어 맘에드는 사발이나 다관을 들고 서울로 돌아온다.
골목길을 지나다가 언제든지 들려도 반갑게 맞아 주는 이웃이 있다는 것은 삶을 향기롭게 한다. 볕 좋은 날이면 마당에 놓인 의자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신다. 마주 보는 녹지 공간이 있어 새들이 마당으로 날아오고 햇살이 찻 잔을 비추는 아침, 장작가마에 구운 다구로 차를 우리고, 추운 날이면 온돌 방에 발을 묻고 찐 고구마를 나눠 먹는다.
지난 가을 똘똘이 엄마랑 광장시장에 가서 천을 뜨고 솜을 사서 한 땀 한 땀 손수 꿰맨 폭삭한 목화솜 요와 명주솜 이불을 만들었다. 세탁기에 훌훌 돌리는 일반 이불에 비하면 번거롭운 일이지만 솜이불의 묵직하면서도 포근함에 견줄 수 없다.
미국에 올 때 가지고 온 작은 가구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피나무로 만든 소박하게 생긴 다기장(다구장)을 바라 보면 한옥마을과 똘똘이 엄마가 생각난다. 차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뜻 건네준 다기장을 볼 때 마다 숨가쁜 생활 속에 한걸음 쉬어 가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전 서울에 전화를 했더니, "도봉산이야" 라며 반가워한다. 가회동의 된장국같은 이웃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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