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8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 백악관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테이프 사본이 2004년 공개됐다. 대화록에 따르면 닉슨은 그해 봄과 여름 북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폭격에도 불구하고 남베트남을 지킬 수 없다고 봤다. 대선을 3개월 앞두고 패전 책임론이 두려웠던 닉슨이 “선거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자 키신저는 “1~2년 뒤 남베트남이 함락된다면 남베트남 무능 때문인 것처럼 보이도록 외교정책을 펼 수 있다”고 답했다. 키신저는 “3~4개월 안에 남베트남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이라며 “1년 후 베트남은 뒷전이 되고 1974년 1월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신저의 호언대로 미국과 남북 베트남은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전 종전을 위한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조건에 대한 남베트남의 반발은 원조 중단 위협 등으로 진압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명예로운 철군’이라는 명분이었다. 또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과 화해하려면 남베트남 철수로 미국에 대한 중국의 안보 불안을 해소해야 했다. 북베트남은 1974년 평화협정을 위반하고 대대적 공격에 나섰고 남베트남은 1975년 패망했다. 키신저는 유사시 미군의 지원을 약속했으나 베트남에서 철수한 미군은 끝내 되돌아오지 않았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들어가면서 서방 언론에 파리평화협정이 회자되고 있다.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점이 유사하다. 또 미국은 “영토 수복은 비현실적”이라며 러시아가 빼앗은 우크라이나 동부·남부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하려 하고 있다. 북베트남 군대의 남베트남 잔류를 허용했던 파리평화협정 때와 비슷한 풍경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주권과 영토를 보장하기로 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치 동맹 강화도 중요하지만 자주 국방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최형욱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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