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29 폭동은 미주 한인사회 120년 역사상 가장 큰 비극으로 방화와 약탈의 집중 타겟이 됐던 한인사회는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당했다. 그러나 한인들은 이 비극에 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이를 경제 재도약과 정치력 신장의 계기로 삼아 지난 3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달성했다. 20일 본보 주최로 열린‘LA 폭동 30주년 기념 세미나’는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는 정치·경제·사회 각계 리더들이 각 분야별로 4.29의 의미와 교훈을 되짚어보고 이를 토대로 한인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날 기조연설자 4명의 발표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미셸 박 연방하원의원 [캘리포니아 48지구]
인종갈등 희생양 정치력 신장을1992년 4.29 폭동의 직접적인 발단은 로드니 킹 구타사건 관련 LA경찰국(LAPD) 4명 경관들의 무죄판결이었다. 여기에 폭동 13개월 전 발생한 한인 업주의 흑인소녀 라타샤 할린스 총격사건의 편파적 보도로 백인 경관에 대한 분노가 한·흑 간의 인종차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한인들에 대한 반감이 확산됐다. 그리고 LAPD의 치안유지 포기로 한인타운과 흑인지역 한인 상인들이 폭도들의 주요 표적이 됐다.
정치력 부재 측면에서는 한인들의 피해를 호소할 정치적 창구 부재, LAPD 공권력의 외면,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한인 정치인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폭동에서 가장 피해를 당하면서 주류사회에 무관심 했던 한인들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자기반성의 계기가 됐으며 정치 참여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또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 발견과 공동체 가치관 확립의 필요성도 인식하게 됐다.
공동체 의식 함양은 중요하다. 이를 통해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주인 의식 고취 ▲한국과 한인 사회만을 보는 시각에서 미국 사회를 함께 보는 시각의 변화 ▲한인 차세대들의 한인사회의 주역으로 참여를 유도하는 의식의 변환 ▲타 커뮤니티와의 교류를 통한 관계 개선 노력▲타민족과의 갈등발생 시 해소를 위한 적극적 방법 강구 등을 추구하게 됐다.
특히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 확립을 통해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책임과 의무주권을 행사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매김하게 됐다.
한인들은 정치 참여 확대를 통해 정치력 신장을 위해 시민권 취득, 유권자 등록, 정당 참여에 적극 나서게 됐다.
구체적으로 지난 30년간 한인들은 ▲투표권 행사, 한인 투표율의 상승은 한인 정치인 수의 상승을 의미 ▲정치가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 변화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한인 정치인 발굴 및 양성을 해야 한다.
케빈 김 행장 [뱅크오브호프]
한인은행들 나서 피해복구 앞장
4.29 폭동은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다. 특히 한인들은 폭동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LA 피해액 8억달러 중 약 절반인 4억달러가 한인 사업체 피해로 추정됐다. 2,300개 이상의 한인 사업체들이 물리적 피해를 당했으며 폭동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한인 파산이 급증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LA 한인은행들이 한인 폭동 피해자를 돕기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했다. 1992년 5월 4일 당시 윌셔, 나라, 중앙, 한미, CKB 등 5개 한인은행장들이 회동했으며 이를 통해 무담보와 저리 융자, 대출 원리금 및 이자 상환 연기 등의 다양한 특별 융자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한인 업주들의 회복 지원에 앞장섰다.
LA 한인은행들은 한국의 IMF 사태로 미국 주재 한인은행들이 철수하거나 영업망을 축소하면서 한미은행이 가주외환은행을 인수하고 나라은행이 외환은행과 제일은행 뉴욕지점을 인수하며 확장세에 나섰다. 1997년 50개 주간 영업규제가 풀리면서 LA 한인은행들은 활발한 타주진출을 토대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나스닥에 나라은행(1998년), 윌셔은행(199년), 한미은행(2001년), 중앙은행(2002년)이 차례로 상장됐다.
2000년대에만 유니티은행(2001년), 태평양은행(2003년), CBB 은행(2005년), 퍼스트 스탠다드 은행(현 오픈뱅크·2005년), US 메트로 은행(2006년) 등 10개 신설 한인은행이 탄생했다. 이후 파산 또는 인수합병을 통해 미주최대 한인은행인 뱅크 오브 호프를 비롯, 한미, 퍼시픽 시티, CBB, 오픈, US 메트로 등 LA와 OC에 본점을 둔 6개 한인은행들의 자산규모는 폭동당시 11억달러에서 지난해 4분기 기준 314억달러로 약 27배 성장했다.
한인은행들의 성장세는 한인사회 경제 성장을 상징하며 한인은행들은 지금도 한인사회가 주 고객으로 다양한 첨단 금융상품을 제공하며 한인사회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한인은행들이 제공한 급여보호프로그램(PPP) 규모만 1만2,207건, 대출규모는 11억5,235만달러에 달해 한인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존 이 시의원 [LA 12지구]
코리안 아메리칸 나아갈 길 제시우리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미국에 이민 왔다. 우리의 부모들은 세탁소, 리커스토어, 스왑밋 등 소매업소에서 하루 12시간, 주 7일 일하면서 하나하나 성공의 기반을 쌓아왔다.
그러나 수많은 우리 부모들이 4.29 폭동으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약탈과 방화 피해를 목격해야 했다. 일부는 재기에 성공을 했지만 많은 한인 소매 업소들이 폭동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아야했다.
4.29 폭동은 분명 비극이었지만 한인 이민자들에게 ‘코리안 아메리칸’의 의미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 폭동을 통해 우리는 ‘코리안 아메리칸 공동체’라는 인식을 새로 갖게 됐으며 ‘시민 참여’(Civic Engagement)를 통해 정부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폭동을 통해 우리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보다 우리와 함께 하고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위안이다. 본인이 정계에 진출한 것도 한인들이 제2의 폭동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코리안아메리칸 정치인이 우리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의원으로 12지역구의 모든 주민들을 대표하지만 코리안아메리칸의 자부심과 소명을 잊지 않고 있다.
LA 시는 LA 시에서 증오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LA for All’(LA는 모두를 위한 곳입니다) 캠페인을 통해 버스정류장, 가로등 등에 한국어 포함 12개 언어로 제작된 공익광고를 게재했다.
LA 시에서 혐오나 증오범죄나 사건을 신고할 수 있는 ‘2-1-1’과 ‘3-1-1’ 신고번호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매년 5월을 ‘아태문화유산의 달’(AAPI Heritage Month & AAPI LA)로 지정했으며 올해부터 ‘아태 LA의 날’(AAPI LA Day) 행사를 런칭했다.
강형원 전 LA타임스 기자 [퓰리처상 수상자]
미 사회 주인의식 커뮤니티 관심1992년 4.29 폭동 당시 LA 타임스에서 기자로 근무했었다.
아시아 밖에서 가장 많은 한인 인구가 LA에 살고 있지만, 주류사회는 한국문화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 또한 본인이 만난 한인상점 주인 대부분은 미국의 계급/인종분쟁과 인권 투쟁의 역사를 거의 모르고, 4.29 폭동 동안 주류 사회의 인종 전쟁에 휘말렸다고 믿었다.
그러나 흑인들이 피 흘리며 데모해서 성취한 1964년 인권보호법 후속으로 1965년 아시아인 이민허용법 통과 후 가장 큰 수혜자는 한인 등 아시안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0년 전 미국사회의 깊고 어려운 문제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45년 전 저희 온 가족이 미국에 이민 온 첫째 이유는 자녀교육이었다.
본인이 33년 넘게 일해 온 주류언론에서는 우리 미주한인들을 ‘남’으로 본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영어를 잘못하고 미국문화와 예의범절에 능숙하지 않은 이민자들은 요즘 급증하고 있는 아시안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되기 싶다.
미국 사회에서 잘 적응한다는 것은 ▲예의가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자기 결정은 자기가 책임지는 Personal Responsibility ▲타인을 존중하는 Respect을 보이고 ▲주변 사람을 챙겨주는 Caring 연민을 갖고 ▲상호신뢰를 얻는 Trustworthiness가 있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평한 Fairness 자세가 필요하다.
자기가 속한 환경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며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챙기는 정신이 미국의 가치관에서는 가장 필요한 Citizenship이라고 하겠다.
미주 한인들이 어딜 가나 환영받고, 우리 후손들이 이 나라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우리 조상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에 바탕을 두고 자존감이 높은 코리안 아메리칸이 되어야겠다. 미국에서 태어난 세대들은 한국인 피 한 방울만 가지고 태어나도 “I‘m a Korean”이라고 말할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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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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