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영‘새’
너를 위해 밤새 노래를 불렀지만 너는 아무 관심도 없었지. 너도 너무 슬펐지, 작은 새야. ‘그 누구도 세상으로 다시 불러올 수 없지만, 아마 여기 오래 데리고 있을 수는 있을거야’ 라고 혼자 말을 했어. 넌 내 노래를 좋아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알 수가 없네.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 그래도 내가 노래를 부르는 방에 함께 있어줬지. 나는 노래를 물려 받았어. 부모에게는 아니야. 할머니에게도 아니야. 할아버지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 내 노래는 나의 것이고 나는 네가 내 노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지. 이제 너는 그 무엇을 사랑했던 흔적도 없네. 하지만 밤새 한 방에 있어줬지. 그 방에는 동전을 입에 넣은 조각품들이 가득했었지. 나는 그것을 만든 것을 후회했어. 어떤 것은 이름도 없거든. 실비아, 앤, 에밀리, 셉. 넌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가끔은, 움직였어. 작은 새야, 나는 중얼거렸지, 마치 내가 너인 듯, 널 사랑해. 나를 위해 노래 해줘. 나는 너를 떠나고 싶지 않아. 계속 노래해줘.
Stephen Ira‘작은 새’ 전문
임혜신 옮김
젊은 시인이 부르는 이별의 엘레지다. 키우던 작은 새를 잃고 아파하는 밤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르면 좋을 것도 같다. 그의 작은 새는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랑을 보내는 슬픔보다 더한 아픔이 있을까. 엘레지, 그러나 얼마나 비현대적인 감각인가? 수없이 들어온 상실의 고통, 사랑의 아픔. 이 비현대적인 엘레지는 가장 사실적인 현대인의 진실이기도 하다. 실비아 플라스, 앤 색스톤, 에밀리 디킨슨, 셉 더빈스키에서부터 밀레니얼 시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노래한다, 사랑해. 떠나지 마. 작은 새야.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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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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