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가 달린 브래지어와
망사팬티를 샀다
여자를 놓아버리기 전에
꼭 한 번쯤 사고 싶었던 것들
이미 소용이 없어졌다는 걸 알지만
햇볕을 보는 일도 없이 저 혼자
옷장 구석 허물처럼 누워 있겠지만
속옷은 은밀한 욕망이 숨어있는 곳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했던 사람처럼
무수한 망설임으로 절개선과
가슴골을 드나들던 침묵,
목젖을 타고 끝내는 삼켜야 했던
긴 목마름
딱, 거기까지
레이스와 망사의 기능은
몸에 익숙해진 뽕 없는 브래지어와
헐렁한 팬티가 여름 한 철
잘도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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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을 겪는 여인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헐렁한 팬티와 뽕 없는 브래지어에 익숙해져 버렸지만 그렇다고 여자가 아닌 게 아니다. 서랍 속에 묵혀질 줄 알면서도 갱년기의 여자가 레이스와 망사가 달린 속옷을 산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쇼핑이다. 쓸쓸한 마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바람과 햇살에 잘 말라가는 헐렁한 팬티처럼, 황홀도 타는 듯한 목마름도 없이 편안할 수 있다면 망사달린 속옷쯤 포기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리라.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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