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무심코 신문의 부고 난을 살펴보다 익숙한 이름 앞에서 멈칫했다. 마지막 그를 만난 지 족히 20년은 되는 듯 한 세월 속에서도 늘 기억 속에 있는 이름…. 설마 하면서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 졌다. 한국에 나온 김에 내가 마지막으로 알고 있던 그가 최근까지 근무 했다던 박물관을 찾았다. 큰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부재가 부고 난에 활자로 찍힌 그의 이름과 오버랩 되며 마음 한편이 묵직해 졌다. 그동안 무심하고 소홀했던 나에 대한 자책이었다.
대학에 입학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내가 성당에 나가게 되면서 그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교회 밖에서 쭈빗거리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 안내해준 인연으로 교리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고 기꺼이 대부가 되어주던 선배였다. 자괴감에 빠져 힘들어 할 때에도 그가 주는 위로에 희망을 꿈꾸었었다. 이곳에 와서 살며 자연스레 그와 소원해지기는 했어도 늘 마음 안에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으로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박물관을 걸어 나오며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무심했던 그동안의 소중한 인연들이 하나씩 떠올랐다.고등학교 시절 붙어 다니던 친구 K는 비록 학교는 달랐지만 대학, 대학원 시절까지 고뇌에 찬 내 청년 시절의 펼쳐질 미래에 대해 솔직해 질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였다. 그 시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불투명한 앞날과 꿈의 괴리에서 함께 고민하며 서로의 진로에 대해 밤새워 얘기하던 그 친구가 두 번의 이혼의 상처를 안고 지방으로 내려간 후 연락이 뜸해 지던 중 내가 이곳으로 이주하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마음으로 늘 안부가 궁금하던 친구를 어느 날 SNS 를 통해 지인의 친구로 만나고 망설임 끝에 메시지를 남겨 놓으며 얼마나 설레던지…그와 끊어진 30여년의 인인의 끈이 새로 연결되기를 바라며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으나 아쉬운 인연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들은 나에게 사랑을 준 사람이었다. 지금이 그들을 찾기에 너무 늦어 버린 것이 아니기를 소망해 본다. 뜨겁던 태양이 사그라지며 마지막 아름다운 석양을 보여주듯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면 내가 맞을 황혼도 그리 쓸쓸하지 않을 듯하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탓으로 내 곁에서 사라지게 했던 사람들, 한때 서로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했으나. 무엇 때문인가로 서로를 져버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 중략… 진작 인연은 한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신경숙님의 ‘인연은 한번밖에 오지 않는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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