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손길 절실했던 초기 이민자들에 ‘한줄기 빛’
지난해 열린 뉴욕한국라이온스클럽 37주년 창립기념 파티. 앞줄 가운데 전인문이 흰 자켓을 입고 있다. 클럽의 전현직 총재는 공식행사때 흰색 자켓에 검은 정장을 입도록 규정돼 있다. 그 오른쪽이 현회장 남세우.
이번 주말인 15일은 ‘눈의 날’이다. 해마다 이날을 맞아 뉴욕한인라이온스 클럽은 무료 안과검진 행사를 갖는다. 금년에는 뉴욕의 이훈 안과와 뉴저지의 성모안과에서 무료진료 행사를 실시한다. 지난 1974년 창립되어 오늘에 이른 뉴욕한인라이온스클럽은 한인사회에서 결코 짧지않은 역사를 지닌 친목 봉사단체 중 하나다.
창립 37년을 넘기는 동안 클럽내 어려움이 있어도 안과 무료진료만은 매년 거르지 않고 실시해 내려오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금년에도 클럽은 그 전통에 따라 안과 무료진료 사업과 당뇨병 조기발견, 청소년 마약 퇴치운동, 홈리스 구제사업 등을 조용히 벌일 계획이다. 후임 회원들에 의해 꾸준히 실시되는 봉사활동을 지켜보면서 누구보다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창설자이자 초대회장 전인문. 오래전 몇몇 동료들과 함께 시작했던 라이온스 운동이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하며 오늘에 이른 것은 그자신의 식지않는 정열과 이를 뒷받침해준 역대회원들 덕분이었다.
“봉사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70년대초 한국에서 이민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때 IBM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미국 주류사회와 손이 닿아 있으니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언어문제로, 이민 수속할 때, 또 법에 저촉됐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몰랐던 것이죠. 당시 한인 변호사라야 손창문씨 등 몇 사람 밖에 없었죠. 법률상담, 의료상담이 주로 많았는데 그런 문제들을 조금씩 도와주다가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한인회장 지내신 이범선, 한인회 이사장 문광환, 정연군, 조광남씨 등 다섯 명이 조직을 통해 정식으로 도와주자는데 의견이 일치됐어요. 그때도 한인회는 있었지만 한인회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봉사단체는 없었고 그래서 …”
뉴욕한국라이온스클럽의 정확한 창립일자는 74년 9월25일. 한국인 이민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친다는 취지를 담고 출범했다. 모임을 주도했던 5명 외에 40명이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그중에는 ‘신라의 달밤’ 가수 현인도 보였다. 초대회장에 전인문<사진>이 선출됐다.
라이온스 국제협회에 수속을 했고 곧이어 뉴욕한국라이온스클럽으로 인준받는데 성공했다. 창립 헌장의 밤이 있은 지 한달 후 1974년 12월 15일 한인사회 역사상 처음으로 무료 진료행사가 실시되었다. 이때 의사 회원인 오창열, 박준영, 박현동, 장기화, 윤선구, 이태봉 등 6명이 참여한 기록이 있다.
초창기 클럽의 봉사 내용은 무료 법률, 이민, 세무, 진료 및 치료상담을 확대하면서 불우이웃을 위한 봉사활동과 마약 퇴치운동 등이었다. 또한 국제본부에서 실시하는 시력보존 사업으로서 맹인들을 위한 사업도 벌였다. 클럽이 안과진료나 맹인들을 중시하게 된 연유는 헬렌 켈러와 관계가 있다. 1925년 헬렌 켈러가 라이온스 총회에 참석했을 때 맹인들을 위해 “어두움을 제거해 주는 용감한 기사가 되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고 라이온스가 그 제의를 받아들여 시력보존 사업을 크게 벌이게 되었다.
그와같이 한인들의 이민초기 척박한 땅에 라이온스운동의 씨를 뿌려 싹을 돋게 한 전인문은 1988년~1989년 라이온스국제협회 뉴욕지구(20-R2) 100여개 클럽을 관장하는 총재로 선출되어 한국인의 위상을 높였다. 국제본부로 부터 친선대사로 임명받는 영예도 안았다. 이후로 클럽은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부속 몬테피오리 병원 안과에 최신 수술기계를 설치, 교육 및 치료 프로그램을 설치하면서 획기적인 무료진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이러한 봉사활동은 매년 지속돼 왔다.
한국서 연대를 졸업하고 한때 에어프랑스 서울지점 판매 매니저로 근무했던 그는 1962년 롱아일랜드대학원에 유학하면서 한인으로선 두 번째로 뉴욕에 태권도장을 열었던 무도인이기도 하다. 워싱턴 스퀘어 부근 카페에서 손목시계 날치기를 맨손으로 격퇴시킨 일화가 뉴욕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그 유명세를 타고 태권도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60년대 뉴욕에서 태권도인 리처드전(전인문)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20년간 뉴욕시립대 헌터칼리지 체육학과 교수를 겸임했던 그는 1980년 미국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도 승단 심사 등으로 관여하고 있다. 저서로 ‘태권도’와 ‘Advancing in TaeKwonDo’ 등 6권이 있다. 슬하에 경미, 용택 남매를 두었고 부인(김광혜)과 뉴저지 테나플라이에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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