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아직도 때묻지 않은 순수한 열여덟살 소녀이고 싶은데, 흐르는 세월의 강에 떠밀려 어느 새 중년을 넘어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을 만큼 아쉽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얼굴에 배어 나오기에 이제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할 때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지나간 일을 되돌아 추억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강(江)과 다르다”고 한다.
또한 피천득 선생은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도 같다” 고 했다. 피 선생의 말대로라면 아름답고 화려한 과거의 추억은 감추어둔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선가 때때로 지나쳐간 그때 그 시절의 추억들이 빛바랜 앨범속의 흑백 사진처럼 아련하게 떠올리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걸 보면 깊이 감추어두었던 보물이 내게도 수북 수북이 쌓여있음이 분명하다.
언젠가 부모님을 모신 공원묘지를 오르는 언덕길에 언제 누가 써놓았는지, 작은 목판에 “나도 한때는 이 세상 사람이었다”라는 글귀를 읽는 순간, 맞어! 이승과 저승이 멀지 않다는것을…….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고, 만난자는 헤어지며, 한번 성한것은 시들고, 높이 오른자는 반드시 내려와야하는 것은 세상의 진리다. 누구나 인연따라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는것이니 갈 때를 대비하여 생사의 도리를 깨닫는 마음의 수행을 해야 함이 절실해진다. 그래서 플라톤은 “인생이란 짧은 기간의 망명이다”라 했나보다.
천주교 대구 대교구청 성직자 묘역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고 한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차례” 죽은이가 산자에게 던지는 이처럼 강력한 경고가 있을까. 이것이 단지 죽음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선한자여 다음번엔 당신이 그분곁에서 평안을 누릴 차례’라는 겸손의 의미가 들어있다 해도 말이다. 세월은 시작도 끝도없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강물같은 세월따라 가는 마음속에 중요한건 건강하게 살아숨쉬는 오늘이란 날이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가를 가슴 깊이 새기며 느껴보게 된다. 남은 세월을 허송치 않는 부지런함과 날마다 범사에 감사하면서 기쁨과 사랑이 넘쳐나는 보람된 삶이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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