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뉴저지 웨스트우드 공동묘지에서 조문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하관예배를 드리고 있다.
지난 3월8일 타계한 조시학 전 뉴욕한인회장이 13일 뉴저지 웨스트우드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장례행사는 3일간 계속됐다. 첫날은 교회 중심의 뷰잉 서비스로 이날은 고인의 미국인 제자들이 대거 참석, 부동자세로 그들의 존경스런 그랜드 매스터의 명목을 빌었다. 미국인 제자 중에는 지역정치인, 경찰 간부 등의 얼굴이 보였다. 이틀째 입관행사는 뉴욕한인회 장으로 거행됐다. 한창연 회장을 비롯해 역대 회장들이 거의 참석해 유족과 함께 추모객들을 맞았다. 김정희(14대), 강익조(17,18대), 조병창(19대), 이문성(20대), 변종덕(21대), 김재택(22대), 이정화(24대), 신만우(25대), 김석주(27대), 김기철(28대), 하용화(31대) 회장 등이 참석했고 뉴욕일원의 태권도인 및 고대교우회 멤버들이 고인을 추모했다. 텍사스 , 워싱턴 등 타지역 태권도인들도 급거 참
석했다.
금슬 좋기로 이름난 조시학 부부
추도사에서 한창연 한인회장은 고인이 제11대 한인회장으로서 뉴욕한인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치하했으며 이정화 역대회장단회의 의장은 미국사회로 부터 존경받는 삶을 살았던 고인의 생애를 회고했다. 후배 태권도인으로 고인의 지도를 받았던 이문성 전 한인회장은 한인사회와 미국사회에 남긴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고대 후배 언론인으로서 필자는 밖으로 나타난 고인의 업적 외에 모범 가장으로서 패션 디자이너였던 부인에 대한 헌신적인 외
조를 회고했다. 또한 김해종 원로목사는 겸손으로 일관된 고인의 신앙생활을 한국어와 영어로 추모했다. 차남 데이비드와 장손 조나단의 회고 메시지가 전달될 때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13일 오전 발인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출발한 영구행렬은 웨스트우드 공동묘지로 이어졌고 고인의 유해는 유족들의 오열속에 안장됐다.
세계태권도의 본부인 국기원은 그에게 태권도인 최고의 영예인 ‘추서단’을 보내왔다. 태권도의 불모지였던 미국에 한국 태권도를 보급한 공로가 인정되어 이미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미국정부로 부터는 백악관 체육자문위원회가 수여하는 평생공로상을 받은 고인은 생전 한인사회로부터 ‘태권도 대부’라는 별명을 들었다.
뉴욕에 한인 최초의 태권도장 ‘헨리조 인스티튜트’를 지난 61년부터 운영하는 한편 전미태권도선수권대회를 창설해 40여년간 매디슨 스퀘어가든 등에서 개최해 왔던 무도인 조시학의 미국생활 54년은 한마디로 개척자, 선구자, 풍운아로 일컬을만큼 힘들고 보람된 생애였다. 뉴욕한인회장으로서, 또 고려대 뉴욕교우회를 창설한 인물로서 그가 남긴 발자취가 크지만 태권도 한가
지만 가지고도 그의 공헌은 지면이 모자라다.
그가 일리노이대에서 삭사과정을 마치던 60년대 초 뉴욕에는 이미 중국의 쿵후와 일본의 가라데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쿵후와 가라데의 틈을 비집고 한국 태권도가 설 땅이 당장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만치 터널 끝에 희미하게 나타나는 환상이 보였다. 환상은 꿈에도 나타났다. 며칠간 열병을 앓은 끝에 그는 ‘헨리 조’라는 미국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모님이 지어준 한국이름 시학의 이니셜 ‘S’를 맨앞에 붙여 S, Henry Cho Institute 태권도장이 맨하탄 154 W. 27 St,에 태어난 것은 그로부터 멀지않은 때였다.
미국이란 나라는 새로운 유행이 나타나면 호기심이 발동해 열광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라였다. 가라데와 비슷하면서 격투의 묘기가 곁들인 한국 태권도의 출현에 매스컴이 먼저 열광했다. 당시 유명했던 잭파 쇼, 자니 카슨 쇼 등 TV쇼에 헨리조 사범이 등장하여 격파시범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뛰어서 격파하는 동작은 그때까지 몸싸움만 보여주던 유도의 단조로움으로부터 탈피해 무언가 깨뜰어지는 자극을 시청자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무렵 배민규, 이용구 등 한국인 사범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나 도장을 가진 사범은 조시학이 유일했다. 뒤를 이어 전인문, 신현옥, 손덕성 등이 개업함으로서 이들에 의해 뉴욕에 한국 태권도 붐이 일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주로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했던 미군병사들이 제대를 하면서 태권도장을 찾는 경향이 있었고 태권도가 보급되는 과정에서 사범들은 한국의 민간 외교사절 역할도 할수 있었다. 자신의 도장이나 대학 등을 통해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무도로서 갖는 태권도의 매력, 예를 들자면 육체적인 단련 외에 정신력 강화와 예의범절, 인내심 배양 등 동양사상을 전파했다. 신비스럽기조차 한 동양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사범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나타나 때로는 지역사회
유지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태권도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정신면이 강조되는 동양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물질 만능주의에 함몰된 미국인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로 비쳐졌다. 강인한 체력 단련과 함께 부모나 선배에 대한 예의를 중시했으므로 무례하기 쉬운 청소년 교육에도 한몫을 했다. 때로 엄격한 규율과 단련 때문에 수련생이나 그 부모들을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이 뒤따랐고 심한 경우 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범들은 인내를 가지고 태권도 정신을 미국사회에 뿌리내리는데 성공했다.
조시학과 같은 개척자들을 비롯해 반세기에 걸친 미국내 한인 태권도 사범들의 피와 땀이 빚어낸 스포츠의 역사라고 할수 있다. 특히 태권도가 올림픽의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그 위상이 한층 강화되고 이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스포츠로서 각광받는 종목이 되었다.
조시학은 자신의 도장 외에도 뉴욕시립 바루크대, 플랫 인스티튜트, 세인트 존스대, 퀸즈보로 커뮤니티 칼리지 등에서 태권도 강의를 했으며 71년 미국 태권도의 최고 영예인 블랙벨트 홀 오브 페임에 선정된데 이어 9개 종류의 스포츠 홀 오브 페이임에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태권도’, “아동 태권도’, ‘셀프 디펜스’ 등이 있다. 그와같은 공로로 조시학은 1970년 한국정부의 국민훈장 석류장과 지난해 백악관으로 부터 받은 평생공로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갖고있다. 조종무<국사편찬위 해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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