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로다’
구태여 득도하신 고승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산은 그대로 있었고, 세월은 나를 통하여 흘러가고 있었다.
걸음마다 묻어나는 땀으로 나를 씻어본다. 육신에 젖은 세속의 먼지를 정화시키며 호흡한다. 이 얼마만에 누리는 호사인가? 사는 것이 무언지, 앞만 보고 왔다.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뛰어 다니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리고 만 그런 허무함이 내 나이 50을 바라보는구나!
늦게 타향살이 시작하여 때론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며 두 주먹 불끈 쥐고 달려온 세월들! 아픔과 눈물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구나! 묵묵히 이런저런 생각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뒤에서 들리는 쉬어가자는 그들의 소리에 나는 깨어났다.
두 딸들을 앞세우고 오신 아빠의 힘찬 웃음소리가 산속을 흔들고, 이제는 삶의 여유가 산 어귀에 흐드러지게 핀 들꽃에게도 나누시는 은퇴한 노부부, 무엇이 좋은지 그저 소곤대며 재잘거리시는 우리의 줌마들, 앞에서 길잡이 하시는 대장님. 뒤에서 팀의 안전을 책임지는 그런 여럿의 길동무와 함께 어우러져 오르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간 쉬는 시간이라 간단한 입가심과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중간쯤이다. 등산하기에 적합한 오르막이다. 날씨의 뜨거운(?) 협찬 속에 덥지 않고, 춥지 않고 아주 안성맞춤행이다. 한국처럼 이산저산 구름 몰고 다니는 진풍경은 없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산이다. 쭉쭉빵빵 redwood가 자태를 자랑하고 사이사이계곡 물도 흐르는 낯설지 않은 산길을 지나니 그 위에 구름이 한 자락 앉아있다.
Mountain biker와 심심치 않게 인사하며 지나는 등산에 재미있다. 젊고 발랄한 두딸의 힘찬 에너지가 모두를 즐겁게 하다보니 어느새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바람의 밥상위에 하나씩 풀어놓은 도시락에 뭍혀, 입만 가지고 간 나는 이것저것 맛보느라 정신없다. 간단하지만 영양만점 찰떡의 레시피를 열심 듣는다. 아! 살맛나는 세상이다.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이 만찬은 더없는 나의 행복감이다.
먹고 나니, 십년지기다. 깔깔대며 내려오는 길은 가볍다. 그동안 무거웠던 마음을 산위에 풀어 놓았나보다. 영지버섯이 나무에 달려있고, 징그러운 바나나 스네일이 바닥을 기어 다녀도 내걸음은 즐거웠다. 산은 나에게 호연지기를 꿈꾸게 했다.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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