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에 다니면서 많은 음악수업을 가르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보람있는 과목은 음악의 기초입문 과목이다. 이 수업은 비전공자들에게 악보를 보고 노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흔히 생각하면 지루한 음악이론 수업이라 생각하기 쉬울텐데, 사실 음악이론은 다 숙제로 내주고(버클리처럼 숙제 많은 학교 있을까?) 수업시간에는 즐겁게 노래만 한다.
처음에 가르칠때는 많이 놀랐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음악이 교육과정 중에 있어서 초등학교만 나와도 높은음 자리표와 도레미 정도는 기본일텐데 여기서는 그렇지가 않다. 첫날 오선지를 가져오라 했더니 그게 뭐냐고 묻는것이었다. 세상에..그건 말이지 다섯줄이 이렇게 그려진 종이인데..하면서 샘플을 하나씩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 높은음 자리표며 도레미도 학생들에겐 생소한 것이었다.
나이들어 음악을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극성스럽게 음악을 배운 동양인들이 역시 음정을 잘 잡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듣고 따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알기전에 이미 듣고 즐기는 것이 음악인데 그동안 어떤 음악경험을 하였나도 아주 중요하다. 우리반에 인도 학생 둘이 있었는데 장조 음계를 죽어도 못부르는거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듣고 따라해보라해도 따라하지 못한다. 그러나 단조에 들어갔더니 단조음계는 금방 쉽게 하는거였다. 어찌된건지 알아보았더니 단조가 오히려 인도의 음계(라가) 중 하나와 비슷해서 그건 몸에 베어 있다는 것이었다. 아..정말 경험이 중요하구나. 사실 우리가 서구에서 가장 중요한 음계 두개를 마치 절대적인것처럼 가르치고 있지만 지구상에는 무수히 많은 음계가 있고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자기 고유의 음계를 쓰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 그 인도 학생들을 나무랄수도 없는 것이다.
미국에 온것이 죄지, 한번도 못들어본 장조를 불러야하니 그 학생들에겐 얼마나 큰 고생이었겠는가. 그러나 어찌되었건 높은음자리표도 모르는 학생도 한학기만에 악보 읽는법과 기본적 이론을 배우고 노래를 부를수 있게 되었으니 그들로서는 감계무량하지 않을수 없다.
오늘은 여름학기의 마지막 날, 즉 기말고사가 있는 날이었다. 기말고사는 콘서트였다. 모든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몇주 전부터 준비한 중창을 청중앞에 들려주는 날이었다.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순진한 그들. 바흐 칸타타, 중세 찬트를 진지하게 부른 그룹부터 비치 보이스 가요에 댄스까지 겸하고 소품까지 준비한 그룹이 있는가 하면 직접 6중창 곡을 작곡작사해서 뚜비뚜바 백코러스와 함께 부른 그룹. 1시간 남짓한 그들의 콘서트는 그 어떤 콘서트보다도 재미있고도 감동적이었다.여전히 음정을 못잡고도 최선을 다해서 큰소리로 부르는 학생. 넘치는 끼를 발산하느라 신난 학생. 가수 모창 하는 학생. 랩을 하는 학생. 시작부터 끝까지 점점 음이 올라간 학생. 한결같이 음악을 즐기고 행복해하는. 배운것에 감사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학생이 되가지고 이런것도 몰라 하며 다소 무시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마음이 부끄러웠다. 음악 경험은 어릴때 하면 너무나 유익하지만 조금 늦었지만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배우고 감사할수 있다면 이것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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