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다. 한 청취자가 자신의 어머님의 건망증에 대한 일화를 적어보냈다. 하루는 어머님이 친구분들을 집으로 초대하셔서 하루 종일 즐겁게 보내셨단다.
그리고 저녁 나절이 되어 친구분들 배웅을 나가셨는데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택시를 잡아서 친구들을 태워 보내고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안 보이시더란다. 한참이나 어머님을 찾았는데 그 내용인 즉슨,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 하시느라 그 곳이 자신의 집 앞인줄도 잊으시고 자신도 택시 하나에 올라타고 가버리셨단다. 그 사연을 듣고 한참을 웃으면서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돈 남말 한다고 했던가. 나이 사십이 넘자 나의 건망증도 올림픽 국가대표 감이다. 셀폰을 여기저기 놔두고 다니는 일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줘야 한다. 여행길을 나섰다 자물쇠를 안 잠근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일도 아니다. 오븐위에 음식물을 올려놓고 깜박 잊어버려 태워 먹은 냄비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부리나케 수화기를 집어들고 “Hello?”했다. 동생이다. 안 들리는 영어로 애쓰고 듣고 말해도 되지 않는다 생각하니 한 순간에 긴장이 풀린다. 너무나 신나게 한참이나 수다를 떨고 있는데 눈 앞에 두었던 셀폰이 안보인다. ‘방금 전에도 있었는데 또 어디로 간거야?’ 얼마 전에도 온 식구들 동원해 집 안을 뒤지다 결국은 자동차 의자 밑에서 간신히 찾았는데 이게 또 무슨 일이지 싶었다. 전화기 찾는게 급선무이긴 했지만 절대로 수다 또한 포기 할 수 없었다.
한 손은 전화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테이블 위의 물건을 이리 저리로 옮기며 열심히 찾았다. 테이블 위에 두었던게 확실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이리저리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찾아보았다. 건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동생이 묻는다. “언니, 왜 그래?” 또 셀폰을 잊어버렸다고 하기도 창피하다. 그래서 “엉 아니……뭐 좀 찾느라고……” 그리고도 한참이나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그림자도 안 보인다. 동생에게 슬며시 이야기했다. “나, 또 셀폰 잊어버렸나봐” 동생이 그런다. “언니 지금 무슨 전화기로 전화 받고 있는데? 언니 집 전화 따로 없잖어?” 이렇게 한심할데가. 어찌 귀에다 전화기를 대고 그 전화기를 찾으러 다닐 수 있을까? 정말 내 자신이 싫다. 이건 불치의 병이다.
처음엔 이래 저래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한 두번이 아니다 보니 아닌 척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꽤나 매사에 완벽함을 자부하던 내가 이렇게 무너질수가 있나 너무나 슬펐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니 나만 겪는 일도 아닌데 그걸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지 않나 싶어졌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더 이상 실수를 숨기지 않고 나의 당혹스러웠던 순간들을 세상과 공유하기로. 나의 실수담을 이야기해주니 모두들 깔깔대고 웃으며 자신들의 허물도 들어내기를 피하지 않는다. 예전같으면 내가 늙어가는구나, 내가 변해가는구나 몇 일은 우울해 했을 일들도 금새 즐거운 이야기거리로 변해버렸다.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의 건망증은 ‘귀에 댄 전화기 십분 찾기’ 정도니 그냥 귀엽게 봐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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