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인간구실 좀 한 것 같다.
토요일엔 언니와 동생네 식구들을, 일요일엔 시어머님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했기 때문이다.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언니와 동생네가 우리집에 온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까마득히 기억도 안 난다. 만날 일이 있으면 주로 언니네 찾아가서 해주는 밥이나 먹었지, 내가 차릴 생각은 오랫동안 접고 살았던 것이다.
혼자 계시는 시어머님도 손자 보러 자주 오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실텐데, 바쁜 며느리 탓에 다녀가신 지가 두달은 넘은 것 같다.
토요일은 마침 동생의 생일이었다. 태어나길 희한한 날 태어난 동생은 원래 생일이 2월29일이다. 그런 날 골라 나오라고 해도 힘들텐데 4년에 한번, 윤년에만 있는 날을 생일로 가졌으니 어릴 때는 놀림도 많이 당했다. 4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고 우리가 제 나이를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동생은 삼일절인 3월1일을 생일로 지키곤 한다.
춘삼월 초하룻날, 기온은 아직도 차갑지만 날씨는 분명히 화창한 봄이었다.
낮에 ‘코스코’와 ‘트레이더 조’ 두 군데 들러 장을 부산하게 보면서 꽃도 두 묶음 사다 꽂았다. 노란색 수선화와 붉은색 튤립 때문에 집안이 얼마나 예뻐지는지, 한결 밝고 화사해졌다.
눈에 보이는 곳만 청소도 대충 했다. 집에 누가 온다고 해야 지저분한 구석이 눈에 보이고 치우는 시늉이라도 하니 정기적으로라도 손님을 초대해야 할까보다.
토요일엔 필레 미뇽(filet mignon) 스테이크 디너를 차렸다. 코스코에서 파는 필레 미뇽은 한번도 얼리지 않은 고기라, 소금 후추, 마늘가루를 조금씩 뿌리고 녹인 버터를 발라 그릴에 구워 먹으면 부드럽고 맛있기가 이루 다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고기가 ‘혀에서 녹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이 스테이크에 구운 감자, 샐러드, 버섯볶음, 옥수수와 함께 바게뜨 빵을 구워냈다.
평소 코스코에 다녀오면 우리 식구끼리 늘 그렇게 해먹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청했는데 인원수가 많다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우리 세 식구에 동생네 세 식구, 언니와 조카까지 모두 8명이었으므로 때 맞춰 그만큼 샐러드를 준비하고 감자를 구우며 스테이크를 굽는 일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 샐러드 드레싱과 스테이크 소스까지 직접 만들어 성공적으로 디너를 서브했다. 조카가 사온 아이스크림 케익을 자르고 ‘해피 버스데이’ 노래까지 불러주자 동생은 오랜만에 받은 생일상이 흐뭇한 지 연신 싱글거리는 표정이었다.
LA마라톤이 있던 일요일엔 시어머님을 모시고 연어구이로 저녁식사를 했다. 고기를 덜 좋아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코스코에서 큼직한 연어 한덩이를 사왔는데 올리브오일과 마늘, 레몬주스, 소금, 후추로 재워두었다가 오븐에 구웠더니 이것도 대성공이었다. 어머님께서 “내 생전 이렇게 맛있는 연어는 처음 먹어본다”고 연신 감탄하셨으니까.
잡곡밥에 시금치조개국, 연어구이, 버섯볶음, 토마토샐러드, 구운 감자, 그리고 김치와 밑반찬들로 한식과 양식을 섞어 상을 차렸다.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이라 양식으로만 차려내면 개운치 않을까봐 퓨전식탁을 만든 것이다.
모든 설거지를 마치고난 일요일 밤, 오래 밀린 숙제를 하고 난 기분이다.
나이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함께 맛난 음식 만들어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가장 즐겁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들은 연이틀 별미가 나오니 좋아하고, 오랜만에 왔던 언니는 뭐 달라진게 있나 방마다 둘러보며 참견을 하고, 어머님은 손주와 함께 TV를 보시며 마냥 웃으시고...
무슨 큰 행사 치르듯 부산떨지 말고, 간단히 차리더라도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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