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는 좀 특이한 나라다. 유럽 주요국들이 모두 인도-유럽계 언어를 쓰는 것과는 달리 우랄어족의 언어를 쓴다. 영어처럼 이름을 성 앞에, 직책을 이름 앞에 쓰지 않고 한국어처럼 성, 이름, 직책 순으로 쓴다. 모음 조화가 있는 것도 알타이계인 한국어와 닮았다.
언어가 일반 유럽과 다른 것은 헝가리 주민의 조상이 다른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한때 ‘신의 재앙’이라 불리던 ‘훈족 아틸라’다. 기원 434년부터 453년 사망할 때까지 훈족의 지도자였던 그는 서로마와 동로마 제국 모두에게 최대의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는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모두 공격했으며 거의 함락할뻔 했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다. 서로마가 게르만 족에 무너진 것도 그가 미리 힘을 많이 빼놓은 탓이 크다.
헝가리를 세운 아르파드 왕조는 그를 자신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헝가리 이름에 ‘Hun’이 들어간 것도 그래서이다. 15세기 헝가리의 왕 마티아스는 스스로를 ‘제2의 아틸라’라고 불렀다.
그러나 헝가리는 그후 오랫동안 유럽의 약소국으로 남았다. 그 이름이 다시 역사적으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56년 헝가리 민주 항쟁 때이다. 이해 10월 23일 대학생들은 국회 앞에서 소련의 압제를 몰아내는데 온국민이 힘을 합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학생 대표단이 마자르 라디오 방송국으로 가 16개항에 걸친 개혁안을 발표하려 하다 보안대에 연행됐다.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들과 경찰간에 충돌이 벌어졌고 경찰 발포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소련은 탱크를 보내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2천500명의 헝가리 시민과 700명의 소련군이 사망했으며 20만명이 해외로 망명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10월23일은 국경일이 됐고 1991년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그 때 일을 공식 사과했다. LA 맥아더 공원에도 민주 항쟁을 기념하는 헝가리 이민자들의 동상이 있다.
이 헝가리가 21세기 들어 세계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빅토르 오르반의 등장과 몰락이 그것이다. 그는 1998년 35살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후 2003년 기독교 민족주의 정당인 피데스를 창당했다.
이민자와 동성애자, 리버럴 엘리트에 대한 증오를 근간으로 법원과 언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을 한 정당이 독점해야 한다는 비자유 민주주의를 내건 그는 유럽 극우 정당의 선봉이었을뿐 아니라 ‘트럼프 앞 트럼프’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도널드의 정책과 행보는 그보다 먼저 나타난 오르반을 그대로 따라했다고 봐도 된다.
오르반의 이런 정책은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불안감, 유럽 연합 관리들에 대한 불신, 경제적 불평등 등으로 불만에 차 있던 헝가리 국민들의 환심을 샀고 그 결과 그는 2010년부터 2026년까지 16년간 절대 권력을 누리는데 성공했다.
이 기간 그는 법원과 언론을 모두 장악했고 선거구를 조작해 집권 여당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긴 세월 동안 헝가리의 경제 수준은 유럽 최하위로 떨어졌고 부패 지수는 최고로 올랐다.
오직 오르반과 그 일파만이 온갖 부정부패로 배를 불렸다. 민심은 떨어져 나갔지만 예스맨으로 주위를 채운 오르반은 이를 읽지 못했다. 이 달 열린 총선에서 유세에 나간 오르반이 자기를 지지하러 나온줄 알았던 군중이 야유를 퍼붓자 당황한 것은 그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과는 참패였다. 선거 전 전체 의석 199석 중 135석이었던 피데스 의석수는 52로 줄어들었고 한 때 피데스 당원이다 떨어져 나간 페테르 마자르의 티스자(헝가리를 대표하는 강의 이름)당은 0에서 141석으로 늘어났다. 압승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다.
그가 이런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은 경제난과 오르반 일파의 부정부패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다른 군소 정당들이 후보를 내지 않고 그의 승리를 도왔기 때문이다. 티스자가 총의석 수 2/3를 넘었기 때문에 오르반에 유리하게 돼 있는 헌법 개정 등 개혁 작업이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오르반의 몰락은 그 하나만의 패배가 아니다. 러시아의 푸틴은 오르반 암살 시도를 통해 그의 지지율을 높이는 방안까지 추진할 정도로 그를 적극 지원했다. 오르반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지원을 막는 최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패자는 또 있다. 미국의 도널드다. 그는 이란 전쟁의 와중에도 선거 며칠전 JD 밴스를 급파해 오르반 유세를 도왔다. 미국 부통령이 다른 나라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임에도 괜히 갔다 망신만 당했다. 오르반의 몰락은 어두운 세상이지만 아직도 희망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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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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