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주민을 지칭하는 뉴요커(New Yorker)들이 즐겨하는 말이 있다. 극과 극이 공존하는 곳이 뉴욕이라고, 가장 미국적이면서 반대로 미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별천지가 뉴욕이라고, 최고의 부와 최악의 빈이 함께 전시돼 있는 천국과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가 뉴욕이라고.
기자도 뉴욕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시 공무원으로 6년간 근무하는 등 87년부터 95년까지 8년간 뉴욕시에 살았던 뉴요커 출신이다. 뉴요커에게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건물이 어떤 건물인가. 뉴욕시의 자랑이요 그 위용과 규모에서 명실공히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그 자체였다.
기자가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건물도 쌍둥이 건물에서 몇 블럭 떨어지지 않아 이번 테러로 큰 손상을 당했다. 기자가 출퇴근길에 사용했던 기차역도 쌍둥이 건물 지하에 있었다. 본의 아닌 ‘관광 가이드’의 역할을 떠맡아 뉴욕을 방문한 친지와 친구들과 함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옥상에 위치한 전망대를 10번도 넘게 방문했다. 건물붕괴 소식을 처음 듣고 전망대에서 선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친절한 중국인 중년 부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들도 무사히 탈출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보고 있다. 지난 41년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폭격이 쇄국주의에 빠져있던 미국을 변화시킨 만큼이나 이번 테러도 미국 정부와 국민의 정책과 의식,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집에서, 차에서, 경기장에서 휘날리고 있는 수많은 성조기가 상징하는 미국인들의 애국심 표출도 진주만 폭격 후의 미국사회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한인중 성조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시민권 선서식 때 나눠주는 작은 성조기는 제외하고 말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에서 발생한 IMF 사태, 홍수와 가뭄 돕기 운동에는 동참하면서 정작 미국에서 발생한 수많은 불행은 강 건너 불 보듯이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던 것이 한인사회였다. 늦게나마 한인사회에서 헌혈을 하고 복구기금을 기부하고 성조기를 게양하는 등 시민의식의 불이 지펴진 것은 이번 비극을 통해 한인사회가 얻은 가장 큰 결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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