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 다가오면 어머니도 오신다. 어머니는 언제나 시원한 바람을 안고 오신다. 참나무 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보다도 더 시원한 바람이다. 생전의 어머니는 더위를 탓한 일이 없었다. 식구들이 더워서 숨을 헐떡일 때 어머니는 우리 형제를 엎드리게 하고 샘물로 등물을 쳐 주시곤 했다. 등물을 치고 나면 숨이 넘어갈 듯하던 몸이 금방 서늘해지는 것이 신기했다.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더위를 모르는 분 같았다. 우리가 덥다고 투덜댈 때 한 번도 덥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기다리던 여름 방학이 왔다. 방학 때 외갓집에 가자고 동생과 함께 이날을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렸다. 방학이 가까워져 오자 외갓집에 갈 때 입을 새 옷과 신발을 사 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다. 옷은 새로 나온 나일론 옷을 입고 싶었다. 방학 이튿날 새 옷을 입고 마을을 나섰다.
삼십리가 더 되는 외갓집까지 갈려면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 했다. 버스도 없었다. 일찍 집을 나서도 여름 태양은 빠르게 우리를 따라왔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더운 열기가 점점 심해졌다. 옷은 땀에 흠뻑 젖었다. 어머니는 장롱에서 꺼낸 옷을 다림질해서 입었다. 시원해 보였다.
“엄마 좀 쉬었다 가요…”
“그러자, 많이 덥지? 조금만 더 가면 외갓집 마을이란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어머니의 손은 시원했다. 입고 있는 옷도 땀에 젖지 않았다. 시원한 바람은 어머니에게로 부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입은 옷은 모시 적삼이었다. 고운 모시로 짠 옷감이라 몸에 달라붙지도 않았다. 여름철에 딱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이곳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모시옷을 입은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 모시옷은 조선시대부터 한국에서 즐겨 입은 옷이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에 여름을 이겨내는 좋은 옷이었다. 서민들이 즐겨 이 옷을 입었다. 몸에 꼭 달라붙는 옷이 아니라 입기에도 편하고 활동하기도 비교적 자유로운 옷이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천연 섬유로 짠 옷이라 자연의 은은한 광택과 결이 사람을 품위 있게 보이게 한다. 모시는 수명을 다하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특성 때문에 시신을 염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자녀들은 그 시신을 깨끗이 씻고 모시옷을 입힌다. 그리고 삼배 포로 몸을 감싼다. 모시와 삼베는 시신 표면에 맺힌 습기를 잘 흡수하고 건조하게 하는 역할을 하여 부패 속도를 늦추어 준다. 그뿐만 아니라 삼베의 굵고 강한 섬유는 장례식 동안 시신을 안정적으로 잘 감싸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나라 땅에서 재배하기 쉽고 가공이 쉬운 천연 섬유를 사용하는 법을 익혔다. 이렇게 모시 적삼은 더운 여름을 거뜬히 이겨내게 하는 옷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때에도 시신을 시원하게 모시는 옷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에 가던 더운 여름날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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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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