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후 이슬람 세계는 후계자 계승 방식을 놓고 혼란에 빠졌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추종자들은 예언자의 혈통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랍 부족장 회의 ‘슈라’는 아부 바크르를 초대 칼리프로 선출했다. 4대 칼리프 알리가 661년 살해되자 균열은 새 변곡점을 맞았다. 군사력을 앞세워 5대 칼리프가 된 무아위야가 ‘선출’ 전통을 깨고 아들 야지드를 세습 칼리프로 임명하자 알리의 차남 후세인이 반기를 든 것이다. 후세인이 680년 카르발라 전투에서 처참히 목이 잘리면서 분열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다. 결국 알리의 추종 세력은 별도의 종파로 갈라져 나왔다. 오늘날 세계 무슬림의 10% 남짓을 차지하는 ‘시아파’의 출발점이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시아파 ‘맹주’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자 이란 성지 잠카란 모스크에는 평소의 녹색 깃발 대신 붉은 깃발이 게양됐다. 아랍어로 ‘오 후세인의 복수자들이여(Ya la-Tharat al-Hussein)’라는 글귀가 쓰인 붉은 깃발은 부당하게 살해된 순교자의 피를 상징한다. 이슬람력 1월 10일에 순교한 후세인을 기리기 위해 무하람(정월) 때 내거는 붉은 깃발을 무하람 외 기간에 게양하는 것은 적을 향한 ‘피의 보복’ 경고다. 2020년 미국 공습으로 이란혁명수비대 산하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가 사망했을 때도 잠카란 모스크에 붉은 깃발이 올랐다.
■보복에 나선 것은 이란뿐만이 아니다.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참전을 선포했고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는 바그다드 공항에 주둔 중인 미군을 겨냥해 드론 공격을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예멘 반군 후티는 대대적 저항을 촉구했다. 시아파가 많은 파키스탄 북부에서는 유혈 시위가 들끓고 있다. ‘피의 보복’의 붉은 깃발 아래 이란이 주축이 된 이른바 ‘시아파 벨트’가 술렁이고 있다. 중동의 불길이 어디까지 타오를지 가늠하기 어렵다.
<신경립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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