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 영화 《해어화》(2016, 박흥식 감독)에는 주인공이 시조를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려한 무대도, 과장된 음악도 없이 오직 한 예인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도 시조를 짓지만, 과연 시조를 ‘부르고’ 있는가.
1927년 이능화가 펴낸 『조선해어화사』는 이 전통을 기록으로 남긴 책이다. 그는 신라에서 조선 말기까지 예인들의 역사를 집대성하며 ‘해어화(解語花)’라는 이름을 예술가적 존재의 상징으로 정착시켰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이 표현은 단순한 미모의 수사가 아니라, 시와 음악, 춤과 풍류를 아우르며 시대의 감정을 번역하던 종합예술가에 대한 존칭이었다. 황진이와 매창의 시조는 활자 이전에 이미 울림을 품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시조를 국어 교과서에서 만나는 ‘글자문학’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시조의 본질에는 노래가 있다. 시조는 가곡·가사와 함께 ‘정가(正歌)’라 불리며, 감정을 절제하고 정제해 느릿한 음률에 싣는 예술이다. 판소리나 민요가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예술이라면, 시조는 절제된 호흡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풍류의 소리였다.
활자 속에 갇혀 있던 글자가 느린 호흡을 만나면 자연의 산세처럼 유유히 흘러가며 흔들리고 꺾인다. 이를 시조의 ‘시김새’라 한다. 시조창은 황(黃)·중(仲)·임(林)이라는 세 음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단단히 중심을 잡고 흔들리는 음, 위로 밀어 올리는 음,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내려앉는 음의 순환 속에서 조선의 선비와 예인들은 우주의 질서를 보았다. 단 세 개의 음으로 세상을 노래하는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깊은 울림이 생겨난다.
한국국악원에 따르면, 본래 시조는 ‘시절가조’, 곧 그 시대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의 음악 곡조 명칭이었다. 이는 영조 때의 가객 이세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신광수, 『석북집』). 최초의 시조창 악보는 19세기 서유구의 『유예지(遊藝志)』와 이규경의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에 전한다. 또한 시조창은 지역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울림이 달라진다. 서울의 경제(京制), 호남의 완제(完制), 충청도의 내포제(內浦制), 영남의 영제(嶺制)는 동일한 형식 안에서도 서로 다른 호흡과 음색을 지니며 각기 지역의 기상을 담아낸다.
근대 이후 활자 문화의 정착과 일련의 역사적 굴곡 속에서 시조는 점차 ‘읽는 문학’으로 변모했다. 그 과정에서 음악적 원형은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을 통해 시조창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디지털 매체는 오히려 잊힌 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는 시조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시절가조’?곧 오늘의 노래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조의 미래는 문학과 음악의 이중 점화에 달려 있다. 우리 고유의 시조 형식이 정가와 함께 계승되고,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가 그 음률을 다시 몸에 새긴다면, 시조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형의 예술로 살아날 것이다. 전통은 자주 접할수록 친숙해지고, 친숙해질수록 사랑하게 된다.
시조가 다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종이 위를 벗어나 살아서 울려퍼지기를 바란다. 그 느린 숨결이 우리의 삶을 적시고 깊은 정서마저 깨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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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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