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트인 언덕위에 자리한 우리 동네에 구름 한점없는 따가운 햇살과 산들바람이 방안에 갇혀있는 무딘 몸을 밖으로 불러 낸다. 간편한 운동복 차림에 넓은 차창의 캡도 모자라 선그라스와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쨍쨍쬐는 오후 햇살에 행여 검버섯, 주근깨가 얼굴에 덮칠세라 고개를 숙이고 걷노라니 지나는 이웃 백인 할머니가 “하이”하면서도 내 행색이 기이한듯 의아한 눈빛으로 힐끔 힐끔 쳐다본다. 다같이 늙어가면서도 흰 피부를 따갑게 내려쬐는 햇살을 개의치 않고 마음껏 드러내며 걷는 그들의 타고난 유전자가 내심 부럽기도 하다.
이곳에 정착후 사시사철 바뀌는 풍요로운 풍경이 마음과 몸을 건강으로 채워 주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발바닥에 족저 근막염이 자리를 잡아 산책할 때마다 불편하다 못해 곤혹스럽기까지하다. 끈질기게 자가치료를 하면 일시적인 병원치료보다 낫다기에 요즈음에는 밤낮으로 마사지와 파스로 통증을 달래다보니 파스냄새가 온몸에 퐁퐁 풍기는 것을 어찌하랴.
한국의 유월 장마는 유별나게 습하고 지루하다. 내 나이쯤이었던가, 이때쯤 장마 철이 되면 관절염으로 몸 여기저기에 파스를 붙이고 생활했던 친정 엄마 생각이 떠오른다. 하루 종일 종종 걸음으로 집안밖을 들락거리며 삼대가 함께 살았던 대가족 뒷바라지로 엉덩이를 붙일 사이가 없었던 엄마가 젖은 손을 닦으며 안방에 들어와 누울 때쯤 잊고있던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 오는듯, 져려오는 신경통으로 욱신거리는 뼈마디에 약효가 다한 파스를 제거하고 새 파스를 몸의 여기저기 다시 붙인다. 때로는 뼈마디의 통증이 너무 심하여 팔 다리를 두드리는 것도 모자라 오죽하면 시원하다 하시면서 그냥 올라가 밟으라고 하시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얼마 전 크고 작은 파스 몇개를 사서 지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돌 다리도 두드려가면서 건너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 분은 지난 추운겨울 이월의 어둑어둑한 새벽 산책 길에 밤사이 내린 비탈길 위로 깔린 살얼음을 잘못 밟아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발목뼈가 부서져 지난 반년동안을 고생하고 있단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파스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거야.” 내 허리에 커다란 파스를 붙여주며 남편이 하는 말이다. 오늘도 유산소운동인 산책만은 빠뜨리지 말자. 그리운 엄마 생각이 내 몸에서 풍기는 파스의 향기로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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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메리옷츠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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