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초 88세의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남부 도시들을 돌며 “개혁하지 않으면 죽는 길 뿐이다”라고 외쳤다. 톈안먼 사태(1989년) 이후 얼어붙은 개혁·개방 기운을 다시 일으키려고 나섰던 ‘남순강화(南巡講話)’가 바로 그것이다. ‘흑묘백묘론’을 앞세운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 그가 선택한 중심지는 광둥성 선전. 다시 30여 년이 흐른 지금 선전은 화웨이·텐센트·DJI·BYD·ZTE 등 세계적 빅테크 기업이 모인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변모했다. 지난해 선전은 국내총생산(GDP) 3조 6800억 위안(약 739조 원)으로 상하이·베이징에 이어 중국 3위 도시의 위상을 굳혔다. 낙후된 어촌에서 1,800만 명의 대도시로 변신한 ‘기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 인계식에서 “내년 정상회의는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선전은 중국 경제 기적의 상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이 올해 APEC 회의 개최지로 문화와 역사의 도시 경주를 선택했다면 중국은 기술과 개방의 결실을 상징하는 선전을 택했다.
■중국의 ‘테크 굴기’를 실현하고 있는 선전시의 성공 비결은 ‘규제 혁파’다. 중국 정부는 1980년 선전을 첫 경제특구로 지정하며 ‘될 수 있으면 허용하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후 기술·금융·데이터 산업에서 규제 샌드박스가 대거 도입됐고 스타트업의 실험을 막는 제도는 과감히 유예됐다. 최근에는 디지털 위안화 시범도시로서 제도적 장벽이 사라졌고 드론 고도 규제까지 완화됐다. 이제 선전은 홍콩·마카오·광둥성 9개 도시를 잇는 초대형 경제권 ‘GBA(Great Bay Area·대만구)’의 중심 도시로 도약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제1차 핵심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지방 도시 하나를 통째로 자율주행 규제샌드박스로 지정해보자”고 제안했다. 선전의 역사를 보면 그 말이 결코 공허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개혁은 선언이 아니라 결단과 실행의 연속이다. 한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계획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얽힌 규제를 먼저 걷어내는 일이다.
<한영일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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