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베스타 스텔론 주연의 영화 ‘데몰리션 맨’(1993)이 그린 가상 도시 ‘샌앤젤레스(San Angeles)’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강력한 메타포다. 도시 지상에는 최첨단 기술과 윤택한 삶이 넘쳐나지만, 지하에는 제도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 쥐를 잡아 먹고 산다. 이 같은 양극화는 겉보기엔 완벽한 유토피아 같지만, 그 공간 아래 드리워진 깊은 그림자를 보여준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이라는 혁신의 파도가 휩쓰는 미국 사회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AI는 놀라울 정도로 인류 문명을 발전시킬 잠재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사회를 통째로 뒤흔드는 거대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잇따른 구조조정 소식은 AI 혁명이 가져온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마존은 물류센터 자동화와 AI 기반 서비스 조직 효율화를 이유로 2022년 말부터 2023년까지 2만7,000명 이상을 감원했으며, 이후에도 최대 3만명에 달하는 추가 감원을 추진하며 인력 축소를 가속화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AI 전환과 인프라 투자 확대를 명분으로 2023년 이후 누적 1만5,000명 이상을 구조조정했다. 결국 AI를 통한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이 가져온 결과는 ‘일자리의 축소’였다. 기업들은 기록적인 수익을 내면서도 인력을 줄이는 ‘환상적인 마법’을 보여줬고, 이는 노동시장에 깊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AI가 가져올 고용 충격에 대한 전문가들의 경고는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 3억명 규모의 풀타임 환산 일자리가 AI 자동화에 노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7년까지 약 6,9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9,7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하며, 노동시장의 대대적인 재편을 예고한 상태다.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지난달 29일 금리를 내린 배경에도 고용 불안이 깊게 자리한다.
        
        가장 큰 문제의 핵심은 AI와 같은 기술 발전의 혜택이 모두에게 균등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AI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가가치는 고용에서 밀려나고 임금을 상실한 노동자들에게는 접근 불가능한 자산이 된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다. 초거대 모델이 열어 젖힌 문은 겉보기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듯하지만, 실제 수혜를 입을 수 있는 권리는 극히 제한적이다. 마치 샌앤젤레스의 지상과 지하처럼 AI 혁명은 새로운 사회적 ‘디지털 계급화’라는 칸막이와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있다. AI 기술을 개발하고 소유한 소수의 초엘리트들이 전 세계의 부를 독점하는 구조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부의 편중 가능성 앞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다시금 중요성을 얻고 있다. 이는 단순히 복지 차원을 넘어 디지털 문명 속에서 최소한의 경제적 접근권을 보장하고 AI 혁명의 파도에서 누구도 완전히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의미가 있다. 다만 기본소득은 여전히 정치적 합의와 막대한 재정적 여건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어 실현이 요원하다.
AI 혁명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 금융, 사회 정의가 복합적으로 얽힌 종합적인 과제다. 우리는 기술 발전의 찬란한 빛에만 도취되는 것을 경계하고, 그 뒤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직시해야 한다. AI는 인류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도구인 동시에 인간 노동자를 거대한 벽 너머로 내모는 칼날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를 쫓으면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공정성을 지켜낼 수 있는 최상의 묘수를 찾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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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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