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LA 한인타운서 22일 후원의 밤 갖는 앤디 김 연방하원의원
▶ 한인교회 다니며 정체성 키워, 부모님 고생하시는 모습 보며
“나는 한인 이민자의 아들입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는 20년 만에 첫 한인 연방의원에 당선돼 미주 한인들의 자부심을 드높였던 주인공은 바로 앤디 김(36·사진) 연방 하원의원이다.
특히, 고아원 출신으로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유전공학 박사가 된 아버지 김정한(69)씨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간호사가 된 어머니 등 그의 가족 이민사가 알려지면서 그의 성공 스토리는 한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한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연방의회 입성에 성공한 앤디 김 의원은 오는 22일 LA 한인타운 더 뱅큇 홀(607 S. Western Ave. 3rd Floor)에서는 김 의원 재선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가 개최된다.
본보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김창준 전 의원 이후 한인으로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입성한 앤디 김 의원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인으로는 유일하게 연방의회에 입성해 활약하고 있는 소감은?
▲매우 영광스럽다. 특히 나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뉴저지 3지구의 주민들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활동하고 봉사하게 돼 감격스럽다. 한인 이민자의 아들로서, 또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미국을 보다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
-어떤 가정에서 자랐나?
▲부모님 두 분 모두 경남 밀양 출신이시다. 197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오셨다가 현지에서 정착하셨다. 아버지는 MIT와 하버드대를 거쳐 유전 공학 박사로 활약했고,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하며 저와 제 여동생의 교육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주셨다.
-본인의 정체성을 뭐라 생각하나?
▲인생의 모든 시간을 미국에서 지냈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늘 품고 살고 있다. 어린 시절 한인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과 함께 한인 교회 등을 통해 지역 한인들과 교류하고, 한인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뿌리가 한국인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부모님께서는 어려서부터 공직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제가 커뮤니티로부터 제공받은 것들을 다시금 커뮤니티에 되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셨다. 때문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고민 없이 중동전문가로 활동하게 됐다.
한국에서 이민 온 부모님이 고생하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봐왔기 때문에 이민자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피부색이나 인종과 무관하게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나만이 아닌 타인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정치인이 되게끔 이끌었다.
-하원 군사위원회(Armed Services Committee)을 자원했다. 포부가 있다면?
▲군사위원회는 주로 국방부와 미군 등을 관리·감독하고 군사전략과 군대 배치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원 내 소위원회다. 저는 매일 밤낮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미군들의 입장을 대변할 것이며, 전 세계 주요 동맹국을 보호할 수 있는 군사 정책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또한 한반도 이슈에 대해 크고 강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 수립은 제게 가장 우선순위이다.
-한인 2세 정치인으로서 임기 중에 추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미 전역 한인 커뮤니티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고등 교육, 헬스 케어 등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또 한인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이 더 나은 환경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번에 LA 방문을 계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LA는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어서 꼭 한 번 들려서 많은 분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한인 커뮤니티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의회에서 한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LA를 직접 방문하게 됐다. 이번에 개최되는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LA 지역 한인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향후 의회에 입문하기를 꿈꾸는 한인 2세들에게 조언을 준다면?
▲나는 평범한 한국인 이민자의 아들이다. 하지만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모든 일을 성실하게 임한 결과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권력은 목표가 아닌 봉사의 도구여야만 한다.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어린 시절 앤디 김 의원의 모습.
●앤디 김은 누구
1982년 미 뉴저지주 남부 지역 말튼에서 태어났다. 이민 1세로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나와 유전공학자가 된 아버지와 간호사로 일하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의 딥스프링스 칼리지를 거쳐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이후 영국의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앤디 김은 옥스퍼드대 유학시절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아이 2명을 두고 있다.
2009년부터 국무부에서 일했고, 2011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당시 미군 사령관이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전략 참모로도 일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년부터 2015년 초까지 백악관 NSC의 이라크 등 중동 국가 담당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중간선거 유세기간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공식 지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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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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