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인권감시단과 공영라디오 이사 등 활약 속, 2세 정치참여 독려
▶ 22일 앤디 김 의원 후원행사
오는 22일 앤디 김 연방하원 후원의 밤 행사를 여는 허지희 캘리포니아주 아태 위원회 커미셔너가 한인 정치력 신장의 중요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박상혁 기자>
퍼시픽 아메리칸 시푸드 컴퍼니(PAFCO) 부회장이자 정치후원가인 허지희 캘리포니아주 아태위원회 커미셔너는 그 많은 직책을 두고 자신을‘커뮤니티 활동가’(Community Activist)라고 소개했다. 개인의 안전과 행복, 건강을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성장해야 하고 힘을 기른 커뮤니티가 다시 개인을 도와주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 온 그녀는 한국어 구사가 유창하고 분석적이면서 신중을 기하는 말투가 주위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특유의 환한 미소만큼이나 주위를 밝게 만드는 허지희씨를 지난 14일 LA한인타운에서 만났다.
▲ 이민 1세대 부모에게 배운 근성
“1970년대 이민 온 1세대는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죠. 문화를 이해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당시 한국은 정치적 힘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어요. 해외로 나온 한인들이 힘을 키워 모국을 도왔고 한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했죠”
고 김형기·이경희(80·미국명 로즈 김)씨 부부의 1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일곱 살 때 뉴욕으로 가족 이민을 왔다. 작고한 아버지 김형기씨는 1972년 한인 업주로는 처음으로 맨해튼 브로드웨이 선상에 가발 도매업체 KPC(코리언 프로덕트)를 진출시켜 브로드웨이 한인상가를 조성한 올드 타이머다.
가발 도매상으로 성공한 아버지를 내조하며 자녀교육에 열성이던 어머니 이경희씨 덕분에 그녀는 어려서부터 플롯을 배우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맨해튼 스쿨 오브 뮤직 예비학교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수석 플루티스트로 활약했던 그녀는 세인트존스 대학에 진학해 응용범죄학(Criminal Justice)으로 전공을 바꿨다. 음악보다는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커뮤니티 봉사와 정부 제도에 관심이 컸던 그녀가 한 선택이었다.
▲ 든든한 조력자 남편을 만나다
허지희씨의 남편은 퍼시픽 아메리칸 시푸드 컴퍼니(PAFCO)의 피터 허 회장이다. 앰허스트 대학에 다니던 남동생 앤소니 김 변호사가 남가주에 살던 룸메이트 선배를 뉴욕의 집에 데려오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PAFCO는 1977년 시아버지인 조셉 허씨가 두 아들과 함께 설립한 시푸드 회사였다.
당시 앰허스트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며 의대 진학 준비를 하던 남편이 아버지의 부름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고 남가주와 뉴욕을 오가며 바쁘게 사는 그와 결혼을 했다. 뉴욕을 뒤로하고 친정어머니와 함께 남가주로 이주했고 딸과 아들을 낳았다. 자녀가 어느 정도 크면서 시아버지의 권유로 세일스 마케팅업무에 본격 투입됐고 사업수완을 발휘해 부사장에 올랐다.
“세일즈 마케팅을 해보니 ‘인적자본’(Human Capital)이 가장 중요했어요. 젊은 투자자들과 개인은 많은 인적자본을 가지고 있을 때 성공하죠. 현재 PAFCO의 직원수는 270명인데 이 중 50명이 20년을 저와 함께 가족같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에요”
▲ LA폭동을 계기로 커뮤니티 옹호가로 변신
1992년 발생한 LA폭동은 그녀에게 한인 정치력 신장의 절실함을 깨닫게 했다. LA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한 4·29 폭동은 한인들이 많은 피해를 당했음에도 미디어에는 오히려 가해자로 비쳐지고 있었다. 커뮤니티의 힘이 약해 개개인이 피해를 보게 되었는데 억울함까지 당한다는 생각에 다양한 정치인들과 교류하는 커뮤니티 활동가, 한인 권익옹호가가 되기로 작정했다.
현재 그녀에게는 국제인권감시단인 휴먼라잇와치의 상임이사 활동이 가장 우선순위가 높다. 두 번째가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의 남가주 공영라디오인 SCPR 종신 이사 업무다. 2005년부터 SCPR 이사로 사회봉사를 시작해 이사장을 거쳐 종신 이사가 된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공영라디오’라는 전통적 미디어가 지닌 전파력은 대단하다. 3천 만명의 청취자를 지닌 남가주 공영라디오 SCPR은 지식수준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며 교육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강조했다.
▲ 한인 2세의 정치 참여는 이 시대의 소명
“정치에서 인적자본은 투자가 필수입니다. 인적자본의 가치는 지속가능한 미래와 연결되죠. 앤디 김 연방하원이나 데이빗 류 시의원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게 후원금을 모아야 합니다. 지역구에서 다른 후보가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든든한 후원자들의 지지가 필요해요”
오는 22일 앤디 김 연방하원(뉴저지 3지구)을 위한 LA 후원의 밤이 열린다. LA후원회 결성에 앞장선 그녀는 앤디 김 연방하원과 2년 전 선거출마 시기에 처음 만났다. 비전이 뚜렷하고 공공 서비스에 재능이 있는 전략가의 이미지를 받았다. 입지전적 인물인 그의 아버지 김정한 유전공학박사를 닮은 아들이었다. 선거에 이길 수 있는 길(Path)을 알려달라고 물어왔지만 스스로가 아시안 2%의 지역구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을 비쳤다고 한다.
정치후원은 ‘승리’보다 ‘과정’이라는 그녀는 반드시 가야 하는 길에 동행하는 것,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함께 가는 과정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한인 정치력 신장에서 후원자의 역할이 크다고 믿는 이유다.
정치인들이 개개인의 재능을 살려서 열정을 갖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도록 지원 사격하는 것이 후원자들이다.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녀는 마케팅에서 인적자본이 최고의 가치를 지녔듯이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정치 후원자로 남고 싶어
그녀는 정치인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시나 주, 국가를 우선으로 ‘포커스’에 헌신해야 하지만 후원자는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에 투신한 이들을 10명, 100명을 후원하면서 힘을 결집할 수도 있어 정치인보다는 후원자(Donner)의 힘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에 후원자로 남고 싶어한다. 435명 연방하원의 의장(Speaker of the House)인 낸시 펠로시도 후원자로 시작했다. 대변인을 3번 했으니 대통령보다 더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며 정치인보다는 뒤에서 힘을 모으는 커뮤니티 옹호자(Advocate)가 가장 행복한 포지션이라고 웃음으로 말했다. 어머니 이경희씨, 딸 아만다 허 펀드매니저와 함께 3대의 삶을 담은 자서전을 쓸 계획이라는 그녀는 딸이 정치를 하게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기에 뒤에서 열심히 도와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자들로 인해 빛이 나는 국가가 미국이에요. 우리 어머니처럼 미국에 와서 맨손으로 바닥부터 시작한 이민자들이 이제 미국을 도와주는 존재가 되었어요. 그리고 우리 딸에게는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죠. 이렇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로드맵 같은 책을 쓰고 싶습니다”
<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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