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뉴욕 타임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러셀 베이커, 1년전 두 번째 퓰리처상을 탔다.[AP=뉴시스]
미국 뉴욕 타임스에서 36년 동안 줄곧 '옵서버(관찰자)'라는 이름의 칼럼을 써왔던 러셀 베이커가 21일 93세로 타계했다.
타임스는 23일 장문의 부음 기사를 실으면서 자사를 비롯 신디케이티드 형식으로 수백 개의 다른 신문에 동시에 실렸던 베이커의 칼럼을 "엉뚱하고" "불경한"이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다. 틀을 벗어나 기발하고, 매인 데 없어 누구 눈치도 안 본다는 뜻이다.
베이커는 37세 때, 신문 기자 경력 15년 뉴욕 타임스 경력 8년차인 1962년에 타임스에 자기 마음대로 750 단어(영어)의 글을 쓸 수 있는 특권과 의무가 주어졌다. 옵서버 칼럼 쓰는 것을 "(매우 불편하고 사용 시간이 한정된) 전화 부스 안의 발레"라고 부른 그는 73세가 된 1998년 크리스마스 날까지 옵서버를 썼는데 총 5000회였다. 1주 3회(금-일-화)가 대종이었다가 후반에 2회, 1회로 줄였다.
1979년 옵서버 칼럼으로 퓰리처 상을 탔다. 이런 부문으로 최초라고 한다. 3년 뒤 자서전 '성장'으로 또 퓰리처 상을 탔다. 가난한 버지니아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대공황기를 겪었다.
언론계의 손꼽히는 저명 인사가 된 베이커는 1993년부터 2004년까지 공영방송 PBS의 주말 '걸작 극장'의 소개 진행자 역을 행했다. 이 소개역은 한다하는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자리다.
뉴욕 타임스는 러셀 베이커를 흔한 칼럼니스트라기보다 보기 드문 유머리스트라고 칭하면서 아트 부크왈드와 쌍벽을 이룬다고 치켜세웠다. 부크왈드는 2007년 타계할 때까지 미국 어디서 어떤 신문을 펼쳐보든 두 번째 페이지나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페이지에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커리커쳐와 함께 발견할 수 있는 유머 만점의 칼럼을 썼다.
베이커의 칼럼은 부크왈드보다 언론인 냄새가 배어있다. 베이커는 어느 날 저널리즘 전문 대학이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야 될 코스를 들자면 어떤 것을 추천할 것인가라는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다.
베이커는 "단 한 코스면 된다. 학생을 문이 꼭 닫힌 어느 집 앞에 세워놓고 기다리게 한 뒤 6시간 지나 누군가 문을 빵긋 열고 '노 코멘트'라고 한 마디하고 다시 문을 닫어버릴 때 그때부터 마감시간까지 800 단어의 기사를 작성하도록 시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 뉴욕 타임스에는 옵서버 같은 특별란은 없고 15명의 칼럼니스트들이 하루 서너명 씩 사설 맞은편의 오피니언 면을 채우고 있다. 비정기 기고자도 함께 쓰는데 현재 고정 칼럼니스트 중 퓰리처 수상의 모린 다우드가 24년 째로 제일 연조가 높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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