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김재완 할머니 댁에 7남매가 모였다. 앞줄 오른쪽부터 넷째 딸 장은수, 김 할머니, 둘째 딸 장복수, 다섯째 딸 장종수 씨.
애난데일 거주 1915년생 김재완 노파
85세에 입문...지난해에 시집 내기도
타향으로 친
울타리 저 쪽
잊혀진 고향
잊지 못할 고향~
시(詩)를 쓰는 100세 할머니. 일본에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있다면 워싱턴에는 김재완 할머니가 있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노익장의 주인공, 김 할머니는 삼일운동 네 해 전인 1915년 3월28일생. 며칠 전, 만 100세를 맞아 애난데일의 자택에서 조촐한 생신연이 마련돼 하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김 할머니가 시혼(詩魂)을 불태우기 시작한 건 85세의 고령이 되어서다. 이경주 시인이 지도하는 중앙시니어센터 문예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어렸을 때 품은 문학소녀의 꿈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답니다. 굽이굽이 돌고 돌다 인생 황혼이 되어서야 그 꿈의 불씨를 되살리게 됐어요.”
남들은 인생을 접는 나이에 김 할머니는 창작의 세계에 빠져들며 삶의 생기를 되찾았다.
이경주 시인은 “90이 다 된 노구를 이끌고 시를 배우겠다고 오셔서 처음엔 무척 놀랐다”며 “그러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결강하는 일 없이 개근상까지 받을 정도로 모범이 되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시인은 그 만학의 열정에 감동해 ‘만각(晩覺)’이란 아호도 지어드렸다.
김 할머니는 틈틈이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고향’ ‘인생’ ‘울 엄마’ 등 자작시의 두께가 쌓이면서 지난해 그의 가족들은 ‘김재완 회고록’을 선사했다. 한국 나이로 100세 생신 축하를 겸해서였다.
회고록에는 그의 딸 장종수 씨의 시도 게재돼 ‘모녀 시집’의 의미를 더하게 했다. 현재 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장 씨는 2014년 워싱턴문인회 주최 ‘제20회 워싱턴 문학 신인문학상’ 부문에 장려상으로 시인의 경지에 든 다섯째 딸이다. 김재완 할머니는 고 장찬익 씨와 슬하에 10남매를 뒀으며 1991년 4남매가 사는 미국으로 이민 왔다.
김 할머니의 딸들이 출석하는 성 프란시스 한인성공회 최영권 신부는 “할머니는 옛날이야기와 만담으로 젊은 사람들을 웃겨주시는 언담(言談) 솜씨는 물론 가곡과 대중가요, 민요까지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열창하는 총기 있는 분”이라며 “100세에 시집을 낸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처럼 창작시에 여념을 불태우시는 노후의 열정에 감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완 할머니는 올해 초 ‘다듬이 소리’란 시를 한국일보에 게재한 후 시작을 잠시 접었다. 거동이 불편한데다 건강이 나빠져서다.
김 할머니는 “정말 산전수전의 한 세기를 보냈다”며 “내 몸과 정신이 허락하는 한 시를 쓰다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가고싶다”고 말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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