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불법체류자들이 세운 나라다. 1607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첫 영국식민지를 세운 이들이나 1620년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온 필그림 모두 이미 그 지역에 살고 있던 포우하탄이나 파투셋 인디언 부족들에게 허락을 받고 정착한 것은 아니다.
이들 인디언들은 처음에는 굶어죽게 된 영국 이주자들에게 먹을 것을 대줬다. 이번 주로 다가온 추수감사절 명절도 인디언들이 필그림들에게 옥수수 재배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것이고 대신 전원 아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인디언 영토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갈 생각이 있는 것이 분명해지자 인디언들의 태도는 바뀌었다. 이주자들과 인디언들과의 싸움이 불가피해졌고 결과는 유럽식 무기와 인디언들이 저항력이 없는 구대륙 병원균으로 무장된 영국인들의 승리였다. 익히 알려진 대로 서부 개척사는 인디언 영토에 대한 침략과 학살, 사기와 강탈의 역사였다.
미국은 인디언들의 땅을 훔친 것으로 만족치 않고 1848년에는 멕시코와 침략 전쟁을 일으켜 당시 미국 영토의 1/3에 달하는 가주와 뉴멕시코 등 광대한 지역을 빼앗았다. ‘미국의 양심’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이런 불법적인 전쟁을 벌인 정부에 세금을 낼 수 없다며 납세를 거부하다 감옥에 갔고 당시 연방 하원의원이던 에이브러험 링컨은 의회에서 이를 규탄했다.
이런 역사를 생각한다면 미국은 불법 체류자 문제에 대해 다른 나라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거기다 불법 체류자들은 지금 미국인들이 하지 않으려는 농업 노동과 청소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미국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죄를 짓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어린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을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추방하는 것은 인도적인 관점에서나 미국 경제를 위해서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지난 6년간 역대 공화당 정권보다 더 많은 불법 체류자를 추방한 민주당 대통령이 있다. 바로 오바마다. 그는 이민자 권익 옹호 단체들이 불법 체류자 추방 중단을 요구할 때마다 자기한테는 그럴 권한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2011년 3월 유니비전 타운홀 미팅에서 “불체자 학생들의 추방 중단을 명령할 수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오바마는 “불체자 추방 중단을 행정 명령으로 할 수는 없다. 법은 의회가 만들고 행정부가 하는 것은 이를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2013년 1월 유니비전과의 인터뷰에서는 같은 질문에 “나는 행정부의 수장일 뿐 왕이 아니다. 나는 법을 따를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 오바마가 지난 주 돌연 입장을 바꿔 500만 불체자의 추방 중단을 명령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말장난도 정도가 지나치다. 헌법학 교수까지 한 오바마가 자신의 행동이 헌법이 규정한 3권 분립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2016년 대선을 겨냥한 포석이라 볼 수밖에 없다. 백인 중도파가 떨어져 나가고 라티노 등 이민자 그룹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벌어진다는 것을 지난 중간 선거에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이런 선택은 추방 공포에 떠는 불체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정치의 안정이란 점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을 선택적으로 집행하지 않아도 좋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일방적 조치에 분노하고 있는 공화당과의 협력도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오바마가 이런 조치를 취하게 만든 데는 공화당내 반이민 그룹의 책임이 크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연방 하원은 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상원을 통과한 이민 개혁 법안을 표결조차 하지 못했다. 이민 문제의 바른 해법은 공화당이 불체자가 미국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숙련직 종사자와 농업 노동자들에 대한 이민 문호를 대폭 여는 것을 골자로 한 이민법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만이 라티노 유권자들을 민주당에 헌납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의 발전을 위하는 길임을 공화당은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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