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토끼 마을이 요즘 다시 소란스럽다. 토끼 마을의 양대 가문인 늑대 집안과 돼지 집안의 지도자가 최근 몇 년 새 바뀌었다. 늑대 집안은 늑대 집안을 일으킨 원조 늑대가 죽은 뒤 그 아들이 얼마 전까지 가업을 이어받아 왔는데 그마저 재작년 급사하자 새파랗게 젊고 살찐 원조 늑대의 손자가 3대 주인으로 등극했다.
원조 늑대의 자손이 아니면 지도자 자리를 넘볼 수 없는 늑대 가문과는 달리 돼지 집안은 5년마다 새 지도자를 돼지들이 뽑는데 이런 방식으로 작년에 새 지도자가 탄생했다. 그런데 새 지도자가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 늑대들은 수십 년 간 지켜왔던 “휴전 협정을 파기하겠다”는 등 “돼지 집안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등 협박을 하고 나온 것이다.
늑대들의 이런 공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체적으로 먹을 것을 만드는 재주가 없는 늑대들은 남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거나 남의 집에 쳐들어 가 먹을 것을 훔쳐야 먹고 살 수 있다. 이들의 공갈 협박은 “먹을 것을 가져 오라”는 절규나 다름없다.
수십 년 전 일요일 새벽, 늑대들은 돼지들이 곤히 잠든 틈을 타 돼지 집안을 습격, 거의 통째로 삼킬 뻔한 적이 있다. “이제는 대대손손 돼지들을 등쳐먹으며 편하게 살게 됐다”고 생각한 순간 난데없이 독수리들이 날아들어 늑대들을 박살냈다. 돼지 집안을 먹어치우기는커녕 오히려 늑대 집안 기둥뿌리가 뽑힐 뻔한 순간 이웃 팬다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생명을 보존하고 늑대 집안도 되찾았다. 그 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늑대들은 등골이 오싹하다. 늑대들은 지금도 돼지는 우습게 알지만 독수리만은 무서워한다. 독수리가 정말 화가 나면 늑대는 그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 집안에 쳐들어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도 늑대들은 주기적으로 돼지 집안에 몰래 침입해 애꿎은 돼지들을 물어 죽이는가 하며 툭하면 길가는 돼지에게 돌팔매질을 해 때려죽이곤 했다. 참다 못 한 한 돼지 지도자가 “자진해서 먹을 것을 줄테니 제발 물지만 말아 달라”고 애원하자 속으로는 좋으면서 큰 인심이나 쓰는 척 받아들였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돼지들이 갖다 바친 물자로 잘 먹고 잘 살며 이를 팔아 신무기도 개발했는데 어느 날 이것이 끊겼다. 돼지 마을에 새 지도자가 들어서고 늑대 마을에 구경 왔던 돼지 한 마리가 늑대가 던진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돼지 쪽에서 늑대 집안 관광을 중단시키고 사과와 진상 규명을 요구해 온 것이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던 공물도 끊겼다.
늑대 쪽에서는 “그까짓 돼지 한 마리 죽은 게 무슨 대수냐”며 관광도 하고 공물도 계속 바칠 것을 요구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새 돼지 지도자는 이를 거부했다. 늑대는 그 후 돼지가 타고 가던 배에 몰래 구멍을 내 수십 마리를 익사시키고 담장 너머로 돌팔매질을 해 여러 돼지가 죽었는데도 돼지 지도자는 끝까지 상납을 거부했다. 그동안 공물 맛에 익숙해진 늑대들로서는 배도 고프고 분해 죽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돼지 집안 지도자가 바뀌었다. 늑대들은 이번에야 말로 본때를 톡톡히 보여 지난번 돼지 지도자의 전철을 밟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다. 지난 5년간 굶주린 것도 지겨운데 다시 5년을 굶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갈협박을 하며 전쟁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것은 돼지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이들을 동경하게 된 일부 늑대들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행동거지를 바로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늑대들은 최근 “전쟁 대신 대화를 하자”는 새 돼지 지도자의 제안을 즉각 일축했다.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대화하자는 자세가 이미 틀렸다. 그동안 밀린 5년 치 먹을 것부터 내놓고 얘기를 해야지 어디 맨입으로 대화를 운운하는가. 돼지로서의 기본 도리도 모르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새 돼지 지도자가 공물 상납을 돼지의 본성으로 알던 옛 방식으로 돌아갈 것인지, 살점을 뜯기더라도 늑대의 협박에 꿋꿋이 버틸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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