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65)의 이름은 특별하다. 그는‘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1979년 등단과 함께 소설‘사람의 아들’ 발표 후 지금까지 수많은 문제작들을 내놓으며 최고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 작가로 굳건한 자리를 지켰다. 100만부 넘게 팔린 소설만 5권이 넘고‘삼국지’는 무려 1,700만부가 팔렸으며, 수십권의 작품이 18개국에 번역돼 소개되는 등 그는‘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이문열 작가는 한국 문학에서‘거장’으로 우뚝 선 것과 동시에, 2000년대 이후에는 정치적으로도 늘 화제와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보수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도 독자층과 팬이 많은 그가‘세계 속의 한국 문학’ 강연을 위해 LA에 왔다. 지난 2010년 동서문화교류회 주최 강연차 들른 지 2년여 만이다. 11일 LA 한국문화원에서 한인들과 직접 만나 강연을 펼친 이문열 작가를 만나 한국 문학과 한국 정치에 대한 솔직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현재와 과거 일에 보수는 진지하고 겸손하고진보는 인색하지 말아야“
-2년만의 미국 방문인데 목적과 소감은
▲미주 한인들과 직접 만남을 갖기 위해 4일 일정으로 시카고를 들러 LA에 왔다. 시카고에서 세미나 형태의 문학토론을 제대로 했다. 이왕 온 김에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니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한 것 같다.
-‘세계 속의 한국 문학’ 강연을 하는데 한인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미국을 한 18번 온 것 같다. 그동안 한국 문인 강연회는 ‘한국 민주화 보고대회’ 아니면 ‘현 정부의 권위적 행태에 대한 성토장’이 되곤 했다. 나는 그런 것 많이 안 해야지 했는데 올 때마다 본국과 관계된 정치적 시비를 이야기하게 됐다. (웃음)
이번에는 그런 모습을 피하고 싶다. 한국 문학의 현황과 현주소 등 문학적 측면의 한류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왔다. 사람들이 ‘한류, 한류 하는데 문학은 뭐 하냐’는 식의 질문을 많이 한다. K-팝 대신 ‘문학 한류’를 이야기 하고 싶지만 속성상 다를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수 논객’으로 불린다. 안티도 많다. 이에 대한 생각은
▲내 입으로 난 보수라고 자처하는데 보수 측은 또 나를 개량주의라고 한다. 한국 보수와 진보의 대립, 분열이 과장되게 보이는 이유는 ‘내용’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는 현재와 과거에 대해서 승인과 계승정신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와 과거에 일어난 일은 개량되고 고쳐져야 하지만 보수는 그것을 판단할 때 진지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진보는 현재와 과거의 일어난 일에 굉장히 인색하고 어떤 면에서 용감하다. 과거의 사실을 끔직한 일이나 잘못된 일로 치부하고 부인만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역사의 진보는 과거 쌓아온 것을 토대로 미래로 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실체를 믿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건국 세력, 근대화 세력, 민주화 세력 역사 위에서 미래로 가는 것이다.
-작가들의 사회 참여에 대한 입장은
▲우선 사람들이 나보고 ‘작가는 진보적이어야 하는데 왜 당신은 보수냐’고 묻는다. 이상하고 서운하다. 미국 작가도 다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진보 작가들이 약한 자를 돕는다고 하는데 근거도 없다.
한국 문단은 지난 대선에서 4번의 집단행동을 했다. 문재인 후보 멘토 역할, 국민후보 추대 운동, 단일화 촉구, (정권교체 희망) 신문광고 등이다. 한국 문단을 구성하는 작가도 유권자다. 이런 행동이 진보적이라면 보수적 행동도 가능해야 한다.
-올해 초 ‘뉴요커’ 잡지에 소설 ‘익명의 섬’을 게재했다. 한국 문학의 세계 진출 전망은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고 싶은 희망이 있었다. 미국 시장만을 보는 게 아닌 다른 접근법을 생각해 뉴요커에 작품을 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뉴요커를 통해 미국에 문학을 알렸다.
1991년 이탈리아에서 책을 냈는데 현지 대사가 무척 기뻐했다. ‘한국도 문학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난감했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문학 한류 분위기 조성이 예전보다 잘 돼 있다. K-팝과 문학은 속성은 다르지만 한국을 알린다는 점에서 맥락이 같다.
다만 우격다짐으로 (현지인에) 떠 먹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과 수요, 요구가 있어야 한다. (미국에 소개된) 신경숙 문학이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가 라는 질문은 있지만 대단한 진보다. 신경숙 작품을 읽은 독자들이 다른 한국 작가에 관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분명히 좋은 현상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최악은 면했다”라는 말의 의미는
▲문재인 후보에겐 잘못하면 건국세력이나 근대화세력을 부인할 것 같다는 우려를 가졌다. 전에 10년 동안 그런 세계가 진행됐다. 우리 실체가 사라진다는 걱정이 들었고 그것을 면했다고 본다. 단, 최악을 면했다고 반드시 잘 된다는 법도 없다.
-지난해 장편 ‘리투아니아 여인’으로 동리문학상을 받은 소감은
▲처음에는 젊은 친구들 상을 이 나이에 가로챈 거 아닌가 싶어 민망하고 그랬다. 근데 싫지 않았고 기쁘게 받았다. 이문열 하면 누구도 작가가 아니고 반은 정치가, 반은 보수논객이란 소리를 10년 들었다. 문학가 소리를 안 들어 이상한 소외감을 느꼈다. 내가 아직 문학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니 반갑고 신통했다. 직접적 사제관계는 아니지만 동리 선생에게 받은 영향도 생각했다.
-새 작품은 어떤 방향으로 집필할 것인가. 이문열 하면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문학은 사실 나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좋고 내가 원하는 세계,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요즘은 그게 바뀌어서 나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상대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더 나빠지거나 불행하도록 가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개 무한정의 시간이 남아있지 않아서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있다(현재 그는 1980년대 가열된 대립을 다룬 ‘예술가 소설’ 형태의 2~3권 분량의 시대물을 구상 중이다).
작가 이문열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문학이란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 내 원칙 중 하나가 교훈적이 되지 말자다. (내 작품이)교훈적이 되는 것이 반갑지 않았다. 소설로서 내 자유로운 상상력과 흥취, 한판 좋은 노래판을 꾸미고 싶다.
-미국에 뿌리내려 살고 있는 한인 이민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민족적 정서로는 조국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인들이 성경의 ‘훌륭한 바벨로니안’이 되었으면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갔지만 훗날 자발적으로 현지 정착한 이들이 많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실천하며 훌륭한 바벨로니안이 되었다. 한인들도 미국에서 훌륭한 코리안 아메리칸이 되면 좋겠다.
■이문열 작가 약력
▲1948년 경북 영양 출생 ▲1970년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 중퇴 ▲1978~1980년 대구매일신문 기자 ▲1979년 동아일보에 중편 당선되며 등단 ▲2003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 ▲2006년 UC 버클리 체류작가 ▲2007~2008년 하버드대 체류작가 ▲2009년~현재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주요 작품
▲사람의 아들(1979)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80) ▲그해 겨울(1980) ▲어둠의 그늘(1981) ▲젊은 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금시조(1983) ▲레테의 연가(1983) ▲영웅시대(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0) ▲변경(1998) ▲호모 엑세쿠탄스(2006)
<글 김형재 기자·사진 하상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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