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앞둔 대마
사람들이 잘 알 것 같은데 잘 모르고, 천덕꾸러기이지만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는 기이한 초목이 워싱턴주에서 ‘대박’ 농작물로 뜨고 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의식주에 두루 용도가 있을 뿐더러 약으로도 쓰이고, 심지어 개솔린을 대체할 자동차 연료로도 개발되는 팔방미인인데, 단 한 가지 특성 때문에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금기작물로 낙인찍혔다.
이 풀로 만든 옷을 입은 왕자가 있었다. ‘마의태자(麻衣太子)’다. 이광수가 쓴 동명소설의 주인공이다. 신라 마지막 왕(경순왕)의 아들인 그는 고려에 투항하려는 아버지를 만류하다가 실패하자 개골산에 들어가 삼베옷(麻衣)을 입고 초근으로 연명하다가 죽었다. 성경에도 마로 만든 천이 나온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그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다.
예전엔 한국사람들이 마의를 평생에 한두번은 꼭 입었다. 상 당했을 때 입는 굴건제복(전통 상복)이 바로 대마(삼베)로 만든 옷이다. 상복은 아니지만 나도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준 삼베 잠방이를 입고 여름 한철을 보냈다. 공기소통이 잘 돼 매우 시원했다. 폭풍을 견뎌내는 배의 황포 돛도, 그 돛을 끌어 올리고 내리는 질긴 밧줄도 대마로 만든 것이었다.
대마 씨에는 단백질(전체 성분의 29%)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우리 조상들이 그 씨앗을 먹고 기근을 견뎠고 변비, 녹내장 따위의 질환도 고쳤다. 일본에선 이미 2002년에 대마 씨에서 짜낸 기름으로 달리는 자동차(Hemp Car)를 선보였다. 영국에선 최근 대마 찌꺼기에 석회를 섞어 만든 벽돌로 집을 지어 대마의 뛰어난 통기성과 단열효과를 입증했다.
이렇듯 유용한 대마가 죄인취급을 받는 이유는 그 마약성분 때문이다. 그래서 마약은 한자로 ‘魔藥’이 아닌 ‘痲藥’이다. 대부분의 마약들이 각성제, 진통제, 환각제의 특성 한 가지를 가진 반면 대마는 그 세 가지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 환각효과가 특히 크다. 대마초를 뜻하는 ‘마리화나’는 포르투갈 어의 ‘Mariguango’(취하게 만드는 것)에서 유래됐다.
대마초라면 대뜸 ‘대마초 가수’가 연상된다.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70년대 중반 신중현,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조용필, 이수미, 장 현, 김추자, 김세환 등 내 또래 가수 50여명이 대마초를 핀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향수’를 부른 이동원은 1977년에 이어 작년 초에도 구속됐고, 요즘 월드스타로 떠오른 싸이도 2001년 대마초 흡입으로 체포됐었다.
가수들은 대마초를 피면 음감이 즉각 예민해져서 소리의 미세한 차이까지 잡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그건 순전히 환각현상이라고 꼬집는다. 코카인, 헤로인 아편, 담배처럼 대마초도 중추신경 억제기능이 있어 중독을 유발하고 결국 뇌세포를 손상시킨다며 대마초는 감각을 왜곡시키고 몸을 망가뜨리는 분명한 마약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인류는 기원전 300만년부터 대마초를 이용해왔다. 유엔 보고서(2004년)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인구의 4%가 대마초를 한해 한번씩은 끽연한다. 미국의 12학년생 중 34.8%가 연간 한번 이상 대마초를 핀다는 보고서도 있다. 대마초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이다. 대마초 합법도시로 유명한 암스테르담도 금년부터 학교 내 대마초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워싱턴주는 작년 말 세계최초로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환자가 아닌 일반 성인도 기호용 대마초를 1온스까지 소지할 수 있다. 재배업자들이 주정부면허를 받기 위해 줄서고 있다. 대마초가 사과와 체리를 제치고 워싱턴주의 최고소득 농작물이 될 전망이다. 이미 캘리포니아, 뉴욕, 플로리다에선 대마초가 파운드당 3,000달러를 호가하는 1등 농작물이다.
주민투표로 확정되긴 했지만 워싱턴 주정부가 세금수입에 눈이 어두워 대마초 합법화를 방조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주정부가 아무리 재정적자에 쪼들린다 해도 마약이 아닌 담배는 강력 규제하면서 분명한 마약인 대마초를 보듬어주는 건 이상하다. 이러다가는 매춘도 근절할 수 없을 바에야 합법화해서 세금을 거두자는 발의안이 나올 것 같아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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