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동진목사(루터교 은퇴/ 미주 크리스천 문인 협회원)
지난달‘감사의 바른 이해’란 졸고를 읽은 한 독자의 격려 전화를 받고‘크리스마스’의 바른 이해에 대해서도 말해 보고자 한다. 바르게 알아야만 바르게 믿게 되고 바르게 믿어야만 또 바르게 살아 바른 곳으로 가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에베소서 4:13). 그러면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아가는 이 삼위일체를 어떻게 해야만 바르게 알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가장 먼저 바르게 아는 일이 최우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단이 진짜인 것으로 잘못 알고 그렇게 쉽게 넘어 가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비슷한 것과 똑 같은 것들이 혼합돼 ‘반짝이는 것은 다 금’으로 보여 질 때가 있다. 그러기에 잘못 알고 따르게 된다. 하지만 반짝인다고 해서 그것이 다 금은 아니다. 은이나 양은이나 구리 그릇도 윤기가 나도록 잘 닦으면 오히려 금보다 더 반짝일 수 있다. 이 같은 허점을 우리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미국 격언에도 ‘Glitter is not all gold(반짝인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가 있다.
아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변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다 보니 반짝이는 것에 유혹되기가 쉽다.
‘크리스마스의 바른 이해’도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란 낱말 자체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바르게 아는 일에서부터 첫 단추를 바르게 꿰어야만 한다. 모든 본질적 의미는 항상 보이지 않는 곳, 즉 저변에 깔려 있고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바다의 물결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구를 뒤덮고 있는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은 1만m에 이를 정도로 그 깊이가 깊다. 하지만 수면에 나타나 보이는 세찬 물결은 고작 500m 안팎 깊이의 물결만이 움직이며 집채만한 파도를 만들어 낸다. 보기에는 바닷물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500m 아래 깊숙이 자리잡은 심연(深淵)의 바닷물은 요동치 않고 큰 바위처럼 끄떡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큰 바위처럼 아무리 거센 바람에도 요동치 않는 그 큰 물 떼를 보아야 한다. 크리스마스도 이 같이 큰 바위와 같은 비유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크리스마스(Χρισμας)란 원어는 헬라어 ‘크리스마(Χρισμα)’에서 왔고, 이는 ‘기름을 붓다’란 동사인 ‘크리오(Χριω)’에서 왔다. 그러기에 ‘크리스마스’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란 뜻이다. 기름 부음은 구약시대는 왕,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 이 세분에게만 부어졌다(사무엘상 15:12, 사무엘하 1:14). 이 3가지 신분을 모두 다 가진 분이 바로 예수다. 그러기에 그를 예수라고만 부르지 않고 반드시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따라 붙게 된다. 그리스도라는 이 낱말은 헬라어로 ‘그리스도스(Χριστος)’란 뜻이다. 이 뜻도 ‘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왕으로 죽음을 다스리는 분이고, 제사장으로 죄를 용서하는 분이고,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양을 인도하듯 선지자로서 양과 같은 우리를 인도하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중요한 교회 절기로 부활절, 감사절 그리고 성탄절 가운데 다른 절기는 Happy란 낱말을 붙여 ‘Happy Easter’, ‘Happy Thanksgiving Day’라 하지만 크리스마스만은 ‘Merry Christmas’라 한다. 그럼 Merry(기쁜)란 낱말이 따라 붙었을까.
성경을 영어로는 ‘Gospel’이라고도 한다. God’s Story(하나님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것이 사람의 이야기는 싸워서 빼앗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의 이야기는 도리어 주시려는 이야기로만 가득 차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는 이 말씀은 성경 66권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한일서 4:9)’는 말씀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흑암(Σκοτος)의 권세아래 있는 우리를 사망에서 사랑의 나라로 옮겼다고 했다(골로새서 1:13). 이 옮겨진 것이 곧 제한적 존재(죽음을 의미)에서 무제한적 존재(영생을 의미)로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바로 십자가를 통해 이 일의 주역을 맡아 주관해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이요, 감사한 일인가. 예수 한 분의 탄생으로 우리의 죽은 씨가 새로운 씨로 바뀌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를 ‘기쁜(Merry)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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