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주 전만 하더라도 한여름이더니 이젠 창을 열면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그 시원함을 따라 나서면 걷기에 참 좋다. 새벽 잠을 깬 휴일 아침이면 물병두개와 과일 몇쪽을 챙겨 가벼운 산행을 떠난다.
돈들이지 않고 운동을 한다는 것도 산행의 장점이겠지만 그보단 자연과 만나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정겨움 들에 그 매력이 있지 않나 싶다.
산길에서 만나는 들꽃들은 언제 보아도 다정하고 정겹다. 노란 들국화들의 무리들이 제 꽃말처럼“상쾌”하게 길손을 반긴다. 조금 더 오르다 보면 좀 더 진한 황금색의 구절초를 만날 수 있다.
모두 국화 과에 속하지만 모양에 따라 이름도 다르고 꽃말도 다르다. 구절초의 어린 잎은 이뇨제로 좋다는데 봄엔 한 보퉁이 따다가 말려 두어야 할 것 같다.
숨이 가쁜 비탈을 좀더 올라 가다 보면 진한 보랏빛으로 만개한 엉겅퀴를 만난다.“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은 건들이면 억센 털이 많이나 있어 너무 꽉 쥐면 손바닥에 가시가 박히기 때문인가 싶다. 조심하여 엉컹퀴 무리들을 뒤로 하고 잔걸음을 옮긴다. 숨이 가쁜 오름 길 귀퉁이에서 한 모금 마시는 물은 바로 꿀맛이다.
봄이면 초록색 풍경이 그리워, 여름이면 방학이라는 이유로, 가을이면 산 전체가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단풍을 만나러 산을 올랐었다.
강원도의 많은 산 중 가장 좋아 했던 산길은 오색약수에서 오대산을 넘는 길이다. 산정에서 만났던 들꽃의 화원. 작은 들꽃들이 우수수 우수수 소리를 내며 흔들리던 길. 내 키만큼 웃자란 들꽃들. 사람 한둘 지날 수 있는 길을 제외하곤 온통 들꽃의 화원이었다. 그 은은한 색깔들로 아름다움을 연출했던 곳. 가을 하늘은 잡힐 듯 가까이 있었고 내 유년의 꿈도 그곳에 함께 했었다.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에선 이삭여뀌를 만날 수 있다. 여름 꽃이긴 하지만 아직 버리기 이른 계절을 잡고 마지막 힘을 다해 수상꽃차례에 달려 꽃을 피운다. 가만히 드려 다 보고있으면 어느새 이마에 쏟았던 땀은 잦아들고 등이 서늘해진다.
가을바람은 우리에게 다가와‘수고했다’며 여름의 더위를 식혀준다. 어느새 산정이고 잠시 쉬어가는 벤치에서 숲을 바라 본다. 지나간 것들과 지나고 있는 것들은 서로 모여 나무 가지에 풍성한 이야기들을 피워놓았다.
내려 오는 길, 당잔대 하나를 만난다.“부드러운 애정”이라는 꽃말때문인가 시선이 오래 간다. 도라지 비슷한 모습으로 피어 있는 보라색 가는 잎. 코를 대고 향기를 맡아 보지만 향이 그리 진하지는 않다.
튀지않는 은은함은 나이를 드는 우리들의 모습 같다. 아카펠라 같이 목소리로만 부르는 노래처럼 순수하게 자연 그대로 피어있는 것들은 가을의 대표작인 억새들이다. 어느 날의 삶처럼 서걱거리며 흔들리는 것들. 억새를 무지하게 좋아 했던 한 친구를 기억해 내고,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 진다.
문득, 복음 성가 한 소절이 흥얼거려진다.‘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느님/진흙 같은 이몸을 정금 같게 하셨네…/들풀에 깃든 사랑 오늘도 베푸시는 주님/온 땅 위에 전하리 그 사랑 크심이라/ 마음의 고향인 산타크루즈의 성당 가족들과 함께 불렀던 성가, 마음이 따듯해 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마당에는 담쟁이 덩굴 같은 것이 벌써 붉은 색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단풍이 들고 있다. 이 계절이 농익기 전에 가까운 곳이라도 길을 떠나고 싶다. 그곳에선 또 어떤 들꽃들이 길손을 기다리고 있을까. 마음은 벌써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이 되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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