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자 여사, 남편 제노위츠 박사 생전 사직작품 공개 계획
한국판 슈바이처 에드워드 제노위츠 박사가 남긴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미망인 김홍자(왼쪽) 여사와 정기영 회계사.
“남편의 남다른 한국 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올해 1월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제노위츠(Edward Janowitz) 박사의 부인 김홍자(70)여사는 1960년대 한국의 생활상이 담긴 사진작품 500점을 한인사회와 나누고 싶다고 20일 밝혔다. 이 작품들은 제노위츠 박사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며 틈틈이 모아온 것들로 상투를 쓴 노인, 리어카에 올라탄 어린이 등 당시 가난한 한국 사회 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제노위츠 박사는 춘천 일대의 무의촌 농민들을 돌보며 사랑을 전했던 ‘한국판 슈바이처’. 당시 간호사로 제노위츠 박사와 함께 일했던 김 여사는 “남편은 더러운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고 꽁보리밥과 막 된장도 마다하지 않으며 한국인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1970년 뉴욕에서 재회해 제노위츠 박사와 결혼한 김 여사는 “남편은 가난해서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에게 깊은 연민을 갖고 있었다”며 “몸이 아픈 사람은 몸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마음을 치료해줬다”고 말했다.
제노위츠 박사는 산부인과 수술이 급했지만 병원비가 없어 죽음을 앞둔 여인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기도 했고, 추위 때문에 굴뚝 옆에 붙어있는 거지 소년의 썩은 다리를 1년 간 미군 병원에서 치료해주기도 했다고. 이렇게 제노위츠 박사가 돌본 환자만 어림잡아 1,000명이 넘는다. 제노위츠 박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강원도지사와 한국 국방부 표창을 수여받기도 했다.
제노위츠 박사는 뉴욕으로 돌아온 후에도 부촌이 아닌 가난한 지역에 병원을 열어 환자를 돌봤다. 김 여사는 “환자들이 병원비를 대신해 닭이나 빵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 여사는 “한인 암 환자를 돌볼 땐 가족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라며 퇴원시킨 뒤 직접 환자의 집으로 방문 진료를 다니기도 했다”고 전했다. 제노위츠 박사를 10년간 알아왔다는 정기영 회계사는 “그는 항상 가난한 자의 편에서 진료했다”며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요즘 세상에 경종을 울린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 여사는 제노위츠 박사의 사진작품들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한인사회에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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