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새로운 것은 즐거운 일, 도전할만 하죠
유럽과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 패션사업에 20여년전부터 아시아계 디자이너 진출이 두드러지며 뉴욕패션계에는 신초이, 주사라리가 선두주자로서 물꼬를 틀었다. 이어 두리 정, 리차드 채, 크리스 한 등이 뉴욕패션쇼에서 급부상했다. 패션계 선배로서 후배들의 멘토가 되고 최근에는 한인커뮤니티 봉사에도 열심인 신초이 브랜드 대표 최신염씨를 만났다.
▲항상 새로운 것은 즐겁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평범한 말이지만 상냥함, 다정함이 묻어있는 밝고 높은 말소리는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최신염(56)씨. 로칼 패션디자이너 1세로써 일하랴, 자원봉사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뛰어난 감각과 미적 센스를 지녀야 할 수 있는 패션 디자이너의 영역을 넘어 요즘은 퇴근 후면 집 근처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파이낸셜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하기 쉬운 “수학적인 머리가 좀 있다”며 웃는 그는 파인낸셜 자격증을 따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이 모든 과정을 즐기고 있다. 이 공부 또한 패션디자이너이자 사업가로써 필요한 것이다.
평소에도 “일을 즐긴다.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고 작업하는 모든 과정이 재미있다”는 그다.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열린 뉴욕패션위크를 둘러보았다. 10일 열린 컨셉 코리아도 갔었다”는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봄가을로 1년에 두 번 열리는 뉴욕패션쇼를 ‘신초이’( Shin Choi)브랜드로 장식하며 전세계에서 모인 패션인들에게 이름을 알렸었다.지난 2009년부터 10년동안은 패션도시 한복판인 소호 머서 스트릿과 스프링 스트릿 사이에 위치한 ‘신초이 스토어’를 열어 젊은이들의 문화 현장이자 만남의 명소가 되었다. 2년 전 매장
을 닫고 현재는 1년에 몇 번 열리는 바이어를 위한 쇼룸 패션쇼와 신초이 웹사이트(shinchoi,com), 특설 부틱에서 고객을 만나고 있다.
미국의 장기간의 경기 침체는 패션산업에도 큰 타격을 주어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했지만 최씨는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있어졌다. ‘맨땅에 헤딩할 때 1Cm라도 나아갈 구멍이 생긴다’는 그에게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없다.
패션을 하면서 그동안 숱한 어려움을 이긴 대안은 ‘백투 베이직’, ‘좋은 퀄리티’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브랜드 신초이의 특징은 30대 젊은 전문인들을 타깃으로 모던하고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필수적인 아이템으로 매년 봄가을로 선보이는 포멀 정장이나 드레스는 여전히 각광을 받고 있다.
브랜드 신초이 외에 2008년 출시된 세컨 브랜드 야니(Yarnie)는 발랄하고도 자연스러운 디자인이 특징으로 주로 톱과 원피스가 주를 이룬다. 특히 최씨가 공을 들이는 분야는 캐시미어 니트로 언제나 고객의 인기 넘버원이다. ‘자꾸 손이 가는 옷‘을 모토로 하다보니 다양하고 안정적인 고객층이 확보된 것이다.“오랫동안 하다 보니 원단은 유럽에 직접 가지 않아도 공장으로 바로 배달된다.”는 그는 한번 거래를 트면 오랜 단골이 되어 신초이 브랜드를 만드는 로칼 공장들이 모두 십년이상 단골이다.
91년 잘 쓰지않는 스트레치 원단을 사용한 팬츠를 개발, 캐주얼 포멀웨어 장르를 개척하자 바니스 뉴욕, 버그도프 굿맨, 앤 테일러 등에서 주문이 빗발쳤고 날씬한 피트에 뒷주머니가 있는 레베카 팬츠와 거친 피트를 지난 캐서린 팬츠는 매시즌 다른 소재로 탄생되어 왔다.당연히 패션 매거진 보그, 하퍼스 바자, 글래머, 마드모아젤, 마리끌레르에 신초이 작품이 실렸고 오프라 윈프리, 줄리아 로버츠, 수전 서랜던 등의 셀러브리티도 신초이를 즐겨 찾은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주류사회에 신초이 브랜드가 알려지자 최신염씨는 한인사회 기여를 시작했다.
2003년부터 한인가정상담소 이사로 일하며 기금모금 바자회에서 신초이 옷을 도네이션 하는 등 1세로서 2세들을 이끄는 역할을 지금도 활발하게 해오고 있다.한민족 여성 리더들의 화합과 교류의 장인 세계한민족 여성 네트워크(Kowin) 회담 스피커는 물론 뉴욕지부에서 활동하며 차세대 리더 양성에 힘써왔다. 물론 뉴욕패션계 한인 네트워크 구축과 상호협력을 위해 2008년 결성된 뉴욕코리안 패션피플 모임 D2(Designer of 2nd Generation) 고문으로써 2세대를 위한 밑거름 역할도 잊지 않고 있다.소호 매장에서는 한인 신진예술가 전시회와 작가의 북 리딩 이벤트 등으로 젊은 아티스트에게 장소 및 기회를 제공해 왔다.
“지금도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자주 간다. 여러 문화 행사에 참여하면서 아이디어도 얻는다”는 그다.초등학생시절 꿈이 오페라 가수였을 정도로 지금도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다. 기독교 신자로서 지역사회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그는 교회 기금모금 바자에 신초이 옷을 내놓아 힘을 보태고 교인들에게 요리강습을 직접 하거나 만드는 법을 알려줄 정도로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다.
패션은 결혼 후에 시작
최신염씨는 부산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졸업후 부산대 총장 비서, 한국 체이스 맨하탄 은행 부산지사장을 지냈고 패션을 시작한 것은 결혼 후다.
1979년 남편과 미국 이주 후,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수트와 코트 전문회사 ‘피보디 하우스’에서 79년~88년 일하며 디자이너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87~89년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면서 88년 남편 헨리 초이와 함께 콜러리지 엔 코(Coleridge & Co)를 설립했다. 패턴부터 샘플까지 혼자 작업할 정도로 밤낮으로 열심히 일 하자 첫 시즌에 블루밍데일과 노드스트럼에서 전 라인을 모조리 사들일 정도로 성공적 반응을 얻었다.
92년 회사명을 콜러리지 바이 신초이(Coleridge by Shin Choi)로 바꾸고 ‘신초이’ 브랜드로 뉴욕 패션계에 데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1998년 아시안 비즈니스 여성에서 선정한 최고 기업가 수상, 2002년 뉴욕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강연, 주류사회에서도 10여년간 활동의 폭을 넓혔다. 이번 봄에는 두 번째로 하버드 대학에서 열리는 강연의 패널리스트로 참여, 지성인들과의 대화와 의견을 폭넓게 나누고 있다.
여성사업가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는 한편 남편 헨리 최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둔 다복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최신염씨. “우리 아들은 내가 봐도 멋있다”며 애정어린 목소리로 소개하는 아들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현재 해군 장교이고 명문의대를 나온 딸은 현재 유펜 대학 교수이다.디자인에 대한 재미는 당연하고 수학도 재미있고 마케팅도 재미있다는 최신염씨. 그에게 ‘항
상 새로운 것은 즐거운 것’으로 도전할 만 것이다. 그의 열정이 자신뿐 아니라 주위사람들에게도 에너지를 선사하고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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